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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맘대로

그저 영화가 좋아서

by 조브라이언 2022. 1.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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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가 시작하기 전 고요와 어둠이 주는 설렘

어떤 영화를 좋아하세요?

지금껏 살면서 8,400편이 넘는 영화를 봤다고 말하면, 의례히 이런 질문이 뒤따릅니다.

"그중에 조아서님의 인생 영화는 뭐예요?"

"조아서님은 어떤 영화를 좋아하세요?"

"좋아하는 감독은 누구예요?"

"배우는 누구를 좋아하세요?"

"기분이 별로인데 아무 생각 없이 웃음 터지게 하는 코미디 영화 좀 추천해 주세요."

"가족 사이 갈등을 그린 영화는 어떤 게 있을까요?"

"이번에 OO감독 신작이 핫하던데, 어땠어요?"

"이번 아카데미 작품상은 어떤 작품이 받을까요?"

"최근 볼만한 영화 좀 추천해 주세요."

 

이런 질문들을 받게 되면, 제 머릿속에서는 즐거운 요동이 휘몰아칩니다.

지난주에 봤던 영화부터, 넷플릭스에서 보려고 찜해둔 영화, 극장 개봉 예정작 리스트,

키노 라이츠 앱에 담아둔 내 인생영화 리스트까지... 수십 편의 영화들 이미지가 삽시간에 떠오르니까요.

 

가끔 이런 질문도 듣습니다.

"조아서님은 영화를 왜 좋아하세요?"

 

그러면 저는 잠시 생각에 빠집니다.

대체 언제부터 영화가 좋아졌을까, 왜 영화를 좋아하게 됐을까....

사람이 사람 좋다는 데에는 별다른 이유가 없다는데,

영화라는 대상을 왜 좋아하고, 언제부터 영화를 좋아하게 됐는지를 생각하게 됩니다.

 

제가 기억하는 영화에 대한 첫 기억은 너무 희미해서 정확히 제 생애 처음으로 본 영화가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이 영화였다, 저 영화였다, 내면에서의 갑론을박이 치열하므로, 이것에 대한 답은 우선 보류해 두겠습니다.

 

다만, 영화를 보는 극장에 대한 강렬한 인상은 중학교 1학년 때, 막내 이모의 손을 잡고 (실제 손까지 잡고 가지는 않았겠지만) 갔던 종로 3가 단성사에서 상영 중이던 배창호 감독님의 <기쁜 우리 젊은 날>을 보러 갔을 때입니다.

 

요즘과 같은 멀티플렉스 시절이 아닌, 서울 도심에 위치한 극장들이 메인 개봉관이던 그때엔 인터넷은 고사하고 전화예약도 있었을까 싶던, 말 그대로 일간지 영화 광고에 나온 상영시간표가 절대적인 정보였고, 극장 매표소에서 줄을 서서 표를 사던 때였습니다. (이건 '라테' 타령의 의도는 없고, 그저 추억을 더듬다 보니 그땐 그랬지, 인 것입니다)

 

마침 막 영화가 시작되었을 시간이고, 이미 불 꺼진 극장 안에 들어서서 더듬더듬 자리를 찾아가던 그때, 어둠에 대한 두려움이 아닌, 스크린에 영사되기 시작한 그 영화의 첫 장면 (황신혜 배우님의 극 중 연극 장면)이 발산해내는 환한 빛과 극장 안을 쩌렁쩌렁 울리던 소리, 정확히 묘사하기는 어렵지만 극장이라는 공간 안에 가득한 어떤 특유의 냄새 그리고 극장 안을 가득 메운 관객들이 일제히 스크린을 숨죽여 응시하는 가운데 뿜어내는 알싸한 긴장감... 이 모든 것이 합쳐지면서 저는 그 극장이라는 공간이, 영화라는 매체가, 전반적인 긴장감과 즐거움에 사로잡혔습니다.

 

그것이 저로 하여금 영화를 보고 느끼고 감동하고 분노하고 슬퍼하고 즐거워하게 만든 시작점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제부터 제 기억 속에 남아 있는 영화에 대한 애정을 글자로 남겨보려 합니다.

 

동시대를 살면서 신작이 발표되면 볼 수 있는 즐거움을 안겨주는 감독,

그저 눈빛만으로도 스크린을 장악하여 그 존재만으로도 설렘을 주는 배우,

눈과 귀를 황홀하게 만들어준 아름다운 영화음악,

강렬한 이미지와 태그 한 줄만으로도 가슴 벅차게 만드는 영화 포스터,

봉투가 열리는 순간 오스카 트로피의 주인공이 누가 될지 알 수 없는 긴장의 순간의 연속, 아카데미상 시상식,

하늘 높이 솟아오른 듯한 극장 간판만 올려다봐도 흥분을 감추지 못했던 멀티플렉스 이전 시대 극장의 추억들...

 

"영화"하면 떠오르는 추억과 기억들을 끄집어내어 글로 풀어보려 합니다. 어떤 특정 영화에 대한 분석과 리뷰만이 아닌, 영화라는 매체에 대한 기억의 단편들과 추억, 그에 따른 의식의 흐름을 못 쓰는 글로 남겨보고자 하는 것이 제가 앞으로 하려고 하는 일입니다.

 

그리고, 영화를 왜 좋아하느냐는 질문에 대해서는 우선 이렇게 답하겠습니다.

"그저 영화가 좋아서."라고.

 

그러니까, 왜 영화가 좋으냐고 물으신다면, 다시 대답할 것 같습니다.

그저 영화가 좋다는데 특별한 이유가 필요하겠냐고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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