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글 내용 중에 영화 <스즈메의 문단속(2022)>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스즈메의 문단속(2022) - 이토록 아름다운 영상미와 작화(作畫)
<초속 5센티미터(秒速 5センチメ-トル) 5 Centimeter per Second(2007)><언어의 정원(言の葉の庭) The Garden of Words(2013)><너의 이름은.(君の名は。) Your Name(2016)><날씨의 아이(天気の子) Weathering with You(2019)> 등 서정적인 작화와 폭풍우처럼 휘몰아치는 스토리의 멋진 조합이 어우러진 작품을 발표해 온 일본의 애니메이터이자 필름메이커이자 작가이자 만화가인 신카이 마코토(新海 誠) Makoto Shinkai의 2022년작 <스즈메의 문단속(すずめの戸締まり) Suzume(2022)>은 2023년 73회 베를린 국제영화제 경쟁부문 초청작으로, 미야자키 하야오(宮崎 駿) Hayao Miyazaki 감독이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千と千尋の神隠し) Spirited Away(2001)>으로 2002년 52회 베를린 국제영화제 황금곰상을 받은 이후, 21년 만에 베를린 경쟁부문에 초청된 첫 장편 애니메이션 작품입니다.
신카이 마코토 감독이 자신의 원안을 토대로 각본을 쓰고, 콘티, 편집과 연출까지 맡았고, <가슴이 떨리는 건 너 때문(胸が鳴るのは君のせい) My Heart Beats Because of You(2021)> 등에 출연한 하라 나노카(原菜乃華) Nanoka Hara가 주인공 스즈메 목소리 연기를 맡았고, <라이어X라이어(ライアー×ライアー) Liar x Liar(2021)><어제 뭐 먹었어? - 극장판(劇場版「きのう何食べた?」) What Did You Eat Yesterday? Movie(2022)> 등에 출연한 마츠무라 호쿠토(松村 北斗) Hokuto Matsumura가 무나카타 소타의 목소리를 연기했습니다.
두 배우와 함께 후카츠 에리(深津繪里) Eri Fukatsu, 마츠모토 코시로(松本幸四郞) Koshiro Matsumoto, 소메타니 쇼타(染谷将太) Shota Sometani, 이토 사이리(伊藤沙莉) Sairi Ito, 하나세 코토네(花瀬琴音) Kotone Hanase, 하나자와 카나(花澤香菜) Kana Hanazawa 등이 목소리 출연했습니다.
지난 2022년 11월 11일 일본에서 개봉, 3주 연속 박스오피스 1위를 차지한 후 2022년 3월 기준 일본 누적 수익 141.4억 엔(약 1,384억 원)으로 역대 일본 흥행 순위 15위에 올랐고, 우리나라에서는 일본 개봉 후 약 4개월이 지난 2023년 3월 8일 개봉, 첫 주말 전국 관객수 69만 명으로 박스오피스 1위에 데뷔했고, 개봉 6일 만에 전국 관객수 100만 명을 돌파했습니다.
어떤 내용이길래
일본 규슈 미야자키현(縣) 소도시에서 이모 이와토 타마키(후카츠 에리)와 살고 있는 17세 고등학생 이와토 스즈메(하라 나노카). 어릴 적 직접 만들어 준 의자 하나만 남기고 세상을 떠난 어머니의 생전 직업이었던 간호사를 꿈꾸는 스즈메는 이른 아침 평소대로 자전거를 타고 등교하던 중, 언덕을 걸어 올라오는 청년 무나카타 소타(마츠무라 호쿠토)와 마주칩니다. 스즈메에게 근처 폐허가 있냐고 묻는 소타. 저 건너 산 쪽에 사람이 더 이상 살지 않는 폐허가 된 온천거리를 소타에게 알려준 스즈메는 다시 가던 길을 갑니다.
하지만 방금 전 만난 소타가 자꾸 신경 쓰이던 스즈메는 학교를 뒤로 하고 소타에게 알려준 온천 폐허로 내달립니다. 한참 이름도 듣지 못해 그저 잘생긴 청년을 찾아 헤매던 스즈메는 바닥에 물이 고여있는 원형 폐허에 덩그러니 서있는 낡은 문을 발견합니다. 호기심에 문 쪽으로 다가가 조심스레 문을 여는 스즈메.
그때 어릴 적 기억 속에 남아있는 아스라한 밤하늘 아래 초원이 문 바깥쪽에 펼쳐져 있고, 스즈메는 뭔가에 홀린 듯이 문 안쪽으로 걸어 들어갑니다. 하지만, 방금 눈앞에 펼쳐졌던 초원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져 있고, 그저 홀로 선 문 반대편에 서 있을 뿐.
무슨 상황인지 얼떨떨한 스즈메의 눈에 포착된 고양이 석상. 스즈메는 이번에도 호기심을 저버리지 못하고 석상을 들어 찬찬히 살펴보는데, 갑자기 석상이 뭔가 살아 움직이는 생물로 변하더니 저쪽으로 달아납니다. 단박에 문의 비밀을 알아챌 수 없었던 스즈메는 다시 학교로 돌아갑니다.
교실에서 친구들과 수다를 떨던 스즈메는 방금 다녀온 멀리 산 쪽에서 검붉은 연기가 기둥처럼 솟구쳐 피어오르는 광경을 목격하고, 함께 있던 친구들에게 말하지만 그 연기 기둥은 오직 스즈메의 눈에만 보이나 봅니다. 곧 천지가 요동치듯 지진이 일어나지만, 길게 지속되지는 않습니다. 그런데 스즈메가 발견한 검붉은 연기 기둥이 더 크고 기묘한 모양으로 변해있고, 스즈메는 다시 자전거를 타고 온천 폐허로 달려갑니다.
아침에 소타를 찾아 헤매다 발견했던 의문의 문에 도착한 스즈메는, 문짝을 부술듯한 기세로 몰아치는 검붉은 연기를 막기 위해 문을 닫으려 젖 먹던 힘까지 쓰고 있는 소타를 발견합니다. 생각해 보니, 스즈메가 호기심에 열었던 문을 닫지 않은 채 폐허를 떠났었고, 안절부절못하는 스즈메에게 어서 도와달라고 말하는 소타. 결국 둘이 힘을 합쳐 겨우 문을 닫은 후, 소타는 뭔가 주문을 외우면서 어느새 문에 나타난 번쩍거리는 자물쇠 구멍에 열쇠를 꽂아 문을 잠급니다.
그러다 거세게 몰아치는 연기를 막으려 문을 닫던 중, 소타의 팔에 상처가 난 것을 본 스즈메는 소타를 데리고 집으로 가 구급상자를 꺼내 익숙한 솜씨로 응급처치를 해줍니다. 그때 스즈메의 2층 방 창문으로 유독 메말라 보이는 하얀 고양이 다이진(야마네 안)이 나타나고, 스즈메는 멸치와 물을 건넵니다.
잠시 후, 자신의 집 고양이가 되지 않겠느냐는 스즈메의 다정한 한 마디에 금세 멀쩡한 모습으로 변신한 다이진은 마치 인간인 것처럼 스즈메에게 말을 겁니다. 갑작스러운 광경에 놀라는 스즈메와 소타. 그때 다이진은 소타에게 방해가 된다고 앙칼지게 내뱉더니, 소타를 스즈메의 엄마가 남긴 의자에 빙의시켜 버립니다.
곧 다이진은 창밖으로 달아나고, 의자가 된 소타가 다이진을 쫓으러 달려 나가고 이를 보고만 있을 수 없었던 스즈메도 뒤를 쫓기 시작합니다.
황홀한 영상에 눈길이 사로잡히지만, 마음속으로는 방황하다
얄궂게도 <스즈메의 문단속>을 보는 내내 빨려 들어갈 듯한 아름다운 영상미에 눈을 떼지 못하면서도, 신카이 마코토가 들려주려는 이야기에는 매료당하지 못하고 겉도는 느낌이었습니다. 음악과 작화가 어우러진 드라마틱한 순간들이 이어지지만, 어딘지 모르게 장황한 이야기가 펼쳐지는데 마음은 따로 놀았달까요.
일본 토속 신앙에서 차용한 모티브가 여기저기 숨겨져 있지만, 발견의 재미를 느낄 새도 없이 쏟아져 나오는 정보들에 파묻힌 듯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친절함이 넘치는 설명에 기댄 '입전개'가 충분했던 것도 아니다 보니, 몇몇 유명한 곳 정도나 알까 말까 한 일본의 곳곳을 다니는 스즈메의 로드무비에 함께 동참하지 못해 안타까움이 속에서 끓어올랐습니다.
예전에 임권택 감독의 <서편제(1993)>가 한국영화 최고 흥행기록을 세웠던 즈음이었으려나요. 어딘가 누구에게 선가 시작된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인 것'이라는 표현이 유행처럼 여기저기서 출몰하던 때가 떠올랐습니다. 어쩌면 신카이 마코토라는 이름 자체가 브랜드가 되어, 그가 발표하는 신작들에 큰 관심이 쏟아지고, 황홀할 정도로 눈부신 영상미에 눈이 혹하면서도, 그 안에 고이고이 담아둔 특유의 정서에는 크게 공감하지 못하는 이런 맘. 과연 30년 전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인 것'이라는 우리의 외침을 들은, 한국인이 아닌 사람들이 가졌을 느낌이 이랬으려나 싶습니다.
[영화 정보]
국내 제목: 스즈메의 문단속(2022)
원제: すずめの戸締まり
영제: Suzume
제작국가: 일본
감독: 신카이 마코토
캐스트(목소리 출연): 하라 나노카, 마츠무라 호쿠토, 후카츠 에리, 마츠모토 코시로, 소메타니 쇼타, 이토 사이리, 하나세 코토네, 하나자와 카나, 카미키 류노스케, 야마네 안 등
장르: 애니메이션/판타지/모험
러닝타임: 122분
관람등급: 12세 관람가
개봉일: 2023년 3월 8일(한국)/2022년 11월 11일(일본)
주요 수상내역:
2023년 73회 베를린 국제영화제 경쟁부문 초청
2023년 46회 일본 아카데미 어워즈 2개 부문 노미네이트 - 올해의 애니메이션, 음악상
2022년 호치 필름 어워즈 장편 애니메이션상 노미네이트
2023년 마이니치 필름 어워즈 장편 애니메이션상 노미네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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