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글 내용 중에 영화 <아비정전(阿飛正傳)(1990)>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아비정전(阿飛正傳)(1990) - 모두가 영원히 기억할 100분
<열혈남아(旺角卡門) As Tears Go By(1988)>로 데뷔한 홍콩 감독이자 각본가이자 제작자인 왕가위(王家衛) Wong Kar-wai의 2번째 장편 연출작 <아비정전(阿飛正傳) Days of Being Wild(1990)>은 왕가위 감독이 쓴 오리지널 시나리오를 토대로 한 로맨스 드라마로, 장국영(張國榮) Leslie Cheung(1956~2003), 유덕화(劉德華) Andy Lau, 장만옥(張曼玉) Maggie Cheung, 유가령(劉嘉玲) Carina Lau, 장학우(張學友) Jacky Cheung, 양조위(梁朝偉) Tony Leung Chiu-wai 등 당대 홍콩 최고 스타 배우들이 등장합니다.
1991년 10회 홍콩 필름 어워즈에서 작품상, 감독상을 비롯, 주인공 아비를 연기한 장국영이 남우주연상을 수상하는 등 총 5개 부문에서 상을 받았고, 왕가위 감독과 5편을 함께 작업한 오스트레일리아 촬영감독 크리스토퍼 도일(杜可風) Christopher Doyle과의 첫 협업작이기도 합니다.
<아비정전(1990)>은 왕가위 감독이 이후 연출한 <화양연화(花樣年華) In the Mood for Love(2000)><2046(2004)>와 함께 비공식 3부작으로 묶이기도 합니다.
멕시코 배우이자 작곡가였던 로렌조 바르셀라타 Lorenzo Barcelata(1898~1943)이 1932년 발표한 곡을 스페인 뮤지션이었던 사비에르 쿠가트 Xavier Cugat(1900~1990)가 편곡한 "María Elena"에 맞춰 장국영이 맘보를 추는 명장면을 비롯해, 브라질 형제 기타 듀오 로스 인디오스 타바하라스 Los Indios Tabajaras의 "Always in My Heart", 장국영이 부른 "何去何從之阿飛正傳(아비에 관한 진짜 이야기)", 엔드 크레디트에 삽입된 매염방(梅艷芳) Anita Mui(1963~2003)이 부른 "是這樣的" 등 왕가위 영화에서 빼놓을 수 없는 매력적인 선곡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어떤 내용이길래
1960년 홍콩. 한 여자에게 구속받기는 싫지만 여자들에 대한 관심의 레이다는 결코 꺼지지 않는 바람둥이 아비(장국영)는 특유의 말솜씨를 발산하여 도박장 매표소에서 일하며 무료한 삶을 사는 소려진(장만옥)의 마음을 빼앗아버리고, 아예 한집에서 함께 살기 시작합니다.
곧 아비의 못된 버릇이 다시 도져, 려진을 집에서 내쫓아버리고는 이내 새로운 여자인 댄서 루루(유가령)를 자신의 집으로 들입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아비가 자신에게 싫증을 내기 시작한다는 걸 감지한 루루는 무기력하게 쫓겨난 려진과 달리, 어떻게든 아비와의 관계를 이어가기 위해 안간힘을 씁니다. 하지만 루루의 노력과 달리, 아비는 루루와의 결별을 성사시키고야 맙니다.
여자들에게 못되게 구는 아비에게는 남모를 상처가 있었으니, 어릴 적 생모에게 버림받은 후 지금의 양어머니(반적화)에게 입양되었으나 이 남자 저 남자를 바꿔가며 사귀던 양어머니에게 마음속 깊이 분노를 느꼈기 때문입니다. 양어머니에게서 생모에 대한 근황을 부득불 알아낸 아비는 생모를 찾기 위해 무작정 필리핀으로 떠납니다.
그러는 사이, 아비에게 내쫓긴 려진은 남은 짐을 챙기러 아비의 집에 들렀다가, 우연히 경찰관(유덕화)을 만납니다. 상처투성이 려진을 다독이던 경찰관은 은근히 려진에게 호감을 느끼지만, 두 사람의 인연이 길게 이어지지는 못합니다. 결국 남자는 경찰 일을 그만두고 뱃일을 하게 되어 필리핀으로 갑니다.
한편, 루루를 오랫동안 흠모해 온 아비의 친구(장학우)는 아비와 루루의 결별을 알고는 루루를 졸졸 따라다니지만, 루루의 관심사는 오직 아비뿐. 하지만 루루에 대한 애정이 남다른 그는, 자신의 차까지 팔아가면서 루루가 아비를 찾아 필리핀으로 가는 데 드는 여비까지 건넵니다. 그리고 아비와 결국 이어지지 못한다면 자기에게 와달라고 자신의 진심을 전합니다.
앙상블 캐스트의 매력이 돋보이는 왕가위 월드의 시작
1990년 12월 22일, <아비정전(1990)>은 당시 을지로 입구에 있던 중앙극장에서 내건 그해 크리스마스 특선영화로 한국 극장가에 화려하게 등장했습니다. 장국영, 유덕화, 장만옥, 유가령, 장학우, 양조위 등 1980년대 <영웅본색(英雄本色) A Better Tomorrow(1986)><천녀유혼(倩女幽魂) A Chinese Ghost Story(1987)>, 그리고 명절 극장가를 점령했던 성룡(成龍) Jackie Chan 영화들 등 홍콩 영화의 인기가 한창이던 때에, 이름만 들어도 각자의 존재감이 상당하던 앙상블 캐스트가 등장하는 홍콩 청춘 영화라니!
하지만 거짓말처럼, 요즘같이 소셜 미디어 따위는 존재하지도 않던 시절이지만 입소문만큼은 요즘 못지않은 속도로 삽시간에 퍼지는 때였고, <아비정전(1990)>은 유명 홍콩 스타들이 총집합하긴 했으나, 뭔가 허전하고 지루한 영화라는 인식이 널리 퍼졌습니다.
그즈음 사대문 안 개봉관에 영화를 보러 갔었고, 어디서 그런 얘길 들었는지, 그리고 '왕가위'라는 이름은 너무 낯설었던지, 극장 입구에 인적이 거의 없어 혹시 휴관이라도 했나 싶던 중앙극장 앞을 싹 지나쳐 인근 다른 극장에 다른 영화를 보러 갔던 쓰라린 기억이 있습니다(그때 <아비정전(1990)>을 제치고 보러 갔던 영화는 니콜러스 케이지 Nicolas Cage, 숀 영 Sean Young 주연의 <아팟치 Fire Birds(1990)>였습니다).
그때 <아비정전(1990)>의 첫 한국 개봉 때 이 영화의 가치를 알아차리기엔 너무 어렸고, 왕가위 감독 영화도 낯설었기에, 그땐 그럴 수도 있겠다 싶기는 합니다만, 다시 생각해도 만약 그때 중앙극장에서 이 영화를 봤다 해도 단박에 좋아했을 것 같지는 않습니다.
아주 뒤늦게, 왕가위 감독의 이후 작품들에 매료되면서 <아비정전(1990)>를 다시 보고, 또 보고, 반복해서 보다가 지쳐 또 볼 정도로 좋아하는 영화가 되었고, 내내 등장하지 않았던 양조위가 갑자기 엔딩을 담당한 뜬금없는 결말도, 당시에는 비난과 야유를 불러일으켰지만, 내심 기다려지는 엔딩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만큼 시간이 흘렀어도 볼 때마다 설레고, 기분 좋은 나른함에 휩싸이게 하는 마력을 가진 영화 <아비정전(1990)>은, 우리가 앞으로도 영원히 기억할 100분을 선물해 준 영화입니다.
[영화 정보]
국내 제목: 아비정전(阿飛正傳)(1990)
원제: 阿飛正傳
영제: Days of Being Wild
제작국가: 홍콩
감독: 왕가위
캐스트: 장국영, 장만옥, 유덕화, 장학우, 양조위, 유가령 등
장르: 드라마/범죄/로맨스
러닝타임: 100분
관람등급: 15세 관람가
개봉일: 1990년 12월 22일(한국)/2008년 4월 1일(한국 재개봉)/2009년 4월 1일(한국 재개봉)/2017년 3월 30일(한국 재개봉)/1990년 12월 15일(홍콩)
주요 수상내역:
1991년 10회 홍콩 필름 어워즈 5개 부문 수상 - 작품상, 감독상, 남우주연상(장국영), 촬영상, 미술상
[관련 글]
왕가위 다른 연출 영화
열혈남아(旺角卡門)(1987) - '왕가위 월드'의 첫 번째 장(章)
※ 글 내용 중에 영화 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열혈남아(旺角卡門)(1987) - '왕가위 월드'의 첫 번째 장(章) 등의 작품으로 30년 넘는 시간 동안 자신의 영화 세계를 구축한 거장 왕가위 王家衛의
bryanjo.com
중경삼림(重慶森林)(1994) - 왕가위는 되지만 따라하면 큰일 나는 '스타일 뽐내기'
※ 글 내용 중에 영화 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중경삼림(重慶森林)(1994) - 왕가위는 되지만 따라하면 큰일 나는 '스타일 뽐내기' 에 이어 본격적인 '왕가위 스타일'을 각인시킨 왕가위 王家衛 감
bryanjo.com
해피 투게더(春光乍洩)(1997) - 부에노스 아이레스, 이과수 폭포, 그리고 아휘와 보영
※ 글 내용 중에 영화 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해피 투게더(春光乍洩)(1997) - 부에노스 아이레스, 이과수 폭포, 그리고 아휘와 보영 홍콩 감독이자 각본가이자 제작자인 왕가위(王家衛) Wong Kar-wai
bryanjo.com
화양연화(花樣年華)(2000) - 양조위의 눈빛, 장만옥의 치파오, 그리고 '유메지의 테마'
※ 글 내용 중에 영화 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화양연화(花樣年華)(2000) - 양조위의 눈빛, 장만옥의 치파오, 그리고 '유메지의 테마' 장편 연출 데뷔작 이후, 등의 작품으로 독보적인 연출 세계를
bryanjo.com
'영화리뷰 1990년대' 카테고리의 다른 글
굿 윌 헌팅(1997) - 상처 입은 마음을 치유해 주는 한 마디, "네 잘못이 아냐" (0) | 2023.04.07 |
---|---|
패왕별희(覇王別姬)(1993) - 중국 근대사의 소용돌이에 휩싸인 비극적 삼각관계 (0) | 2023.04.02 |
매트릭스(1999) - 세기말 SF영화의 판도를 바꾼 비주얼 혁명 (0) | 2023.04.01 |
종횡사해(縱橫四海)(1991) - 명화(名畵) 전문 도둑 3인조의 신나는 활극 코미디 (0) | 2023.03.31 |
해피 투게더(春光乍洩)(1997) - 부에노스 아이레스, 이과수 폭포, 그리고 아휘와 보영 (0) | 2023.03.30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