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글 내용 중에 영화 <안개기둥(1986)>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안개기둥(1986) - 결혼지옥도(結婚地獄圖)
<골목대장(1979)>으로 데뷔한 후, 1980년대 영화 연출과 MBC 드라마 연출을 병행했던 고(故) 박철수 감독(1948~2013)의 8번째 장편 연출작 <안개기둥 A Pillar of Mist(1986)>은 박철수 감독의 전작 <어미(a.k.a. 에미) Woman Requiem(1985)>에 이어 황기성사단에서 제작했습니다.
주인공 '나'를 연기한 최명길 배우와 '그'를 연기한 이영하 배우가 1986년 25회 대종상 여우주연상과 남우주연상을 나란히 수상했고, <안개기둥(1986)> 작품 자체로는 대종상 우수작품상을 수상해, 황기성사단은 전년도 <어미(1985)>에 이어 2년 연속 대종상 우수작품상을 수상했습니다.
대종상 3개 부문 수상작이라는 명성과 함께 1987년 2월 28일 종로 3가에 있는 피카디리 극장에서 개봉, 서울 관객수 64,892명을 기록했습니다.
어떤 내용이길래
대학시절 사랑에 빠져 졸업과 동시에 결혼까지 하게 된 나(최명길)와 그(이영하). 꿈결 같던 신혼시절을 즐길 새도 없이 첫째 아이가 태어나, 사회생활과 육아, 거기에 집안 살림까지 모조리 나의 몫이 되고, 그는 나에게 직장을 그만두고 집안일에 전념하기를 종용합니다. 그나마 가끔 아기를 봐주던 시어머니(박정자)까지도 회사에서 돌아온 나에게 눈총을 주기 일쑤 더니, 급기야 자신은 더 이상 손녀 봐주는 일은 못하겠다고 선언해 버립니다.
결국 직장을 관둔 나는 둘째 아이까지 출산한 후, 육아와 살림에 치여살면서 점점 사회와는 멀어지게 된 반면, 그는 회사에서 승승장구하며 점점 더 직급이 높아지며 이른바 출세가도를 달립니다. 그러면 그럴수록 나와 그의 사이는 점점 더 멀어지고, 회사 일을 핑계로 그의 귀가가 늦어지는 일이 다반사가 되고, 두 아이의 양육도 온전히 나의 몫이 되어 버립니다.
결혼하지 않은 대학 후배(서갑숙)가 출판 번역일을 나에게 맡겨, 그나마 사회와의 연결고리가 되살아나지만, 그는 나의 일을 하찮게 여깁니다. 눈치를 보아하니 그는 집 밖에서 외도도 즐기는 것 같고, 시시때때로 손찌검까지 하는 오만불손한 태도를 견지하는 그. 나의 고민이 점점 깊어가던 중, 나는 자신의 인생에 중대한 결정을 내리게 됩니다.
해도 후회, 안 해도 후회라는 결혼이라는 굴레에 대한 1980년대 식 해법이라면 해법
대체 그런 것이 존재하나 싶을 정도로 명칭부터 생경한 『가정헌장(家庭憲章)』 중 인용구가 영화 시작 직전에 화면을 가득 채웁니다.
"가정은, 가족구성원 모두가 서로를 존중하고 사랑하며 살아가는 민주적 공동체이다.
부부관계와 부모자녀 관계는 권위주의적인 상하관계나 어느 한쪽의 희생을 정당화하는 관계가 되어서는 안 된다."
그리고 곧바로 이어지는 '나'와 '그'의 첫 만남부터 결혼까지, 풋풋했던 시절이 흑백 사진 몽타주.
하지만 본론이 시작되면서, 영화 <안개기둥(1986)>은 가정헌장의 인용구도 눈만 마주쳐도 웃음이 날 것 같던 대학 시절의 나와 그의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본격적인 결혼생활에 찌든 결혼 1년 차 부부의 이야기를 보여줍니다.
'자고로 여자란...'이라며 아내가 그저 자신에게 복종하기만을 바라는 남편 '그'와, 강요에 못 이겨 회사 일을 관두고 전업 주부가 되어 자신의 능력을 충분히 펼칠 기회를 박탈당한 아내 '나'의 갈등은, '그땐 그랬지'라며 요즘엔 말끔히 해소된 것처럼 껄껄 웃으며 그저 옛날 영화 보듯 맘 편하게 볼만한 가벼운 주제는 아닙니다.
단지 그에게 꼬박꼬박 존대하는 나의 말투라던가, 나를 대놓고 무시하는 권위적이고 강압적인 그의 태도, 감히 아내에게 손찌검을 하는 남편과 얻어맞고도 야만인이라고 핀잔주는 일이 다인 나의 답답한 태도 등은 보기에 불편하지만, 영화가 제작된 시기가 1980년대 중반이었음을 감안은 해야겠죠.
결국 그와의 결혼생활을 박차고 나와, 가정 바깥의 사회인으로서 정체성을 찾아가는 나의 결단 이후, 오만불손하던 그의 태도가 갑자기 뒤바뀌는 상황이 다소 당황스럽기는 하지만, 당시 시대상을 감안했을 때 영화의 결말은 상당히 파격적이고, 그래서인지 시간이 한참 지나 다시 봐도 나름의 신선하고 세련된 감각이 엿보입니다.
[영화 정보]
제목: 안개기둥(1986)
영제: A Pillar of Mist
제작국가: 한국
감독: 박철수
캐스트: 최명길, 이영하, 박정자, 서갑숙, 오승명, 이영범 등
장르: 드라마
러닝타임: 111분
관람등급: 청소년 관람불가
개봉일: 1987년 2월 28일
주요 수상내역:
1986년 25회 대종상 3개 부문 수상 - 우수작품상, 여우주연상(최명길), 남우주연상(이영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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