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멘탈(2023) - 신선한 발상을 살리지 못한 진부한 스토리
※ 글 내용 중에 영화 <엘리멘탈(2023)>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월트 디즈니 픽쳐스와 픽사 애니메이션 스튜디오의 27번째 장편 애니메이션 <엘리멘탈 Elemental(2023)>은 <굿 다이노 The Good Dinosaur(2015)>로 장편 연출 데뷔한 애니메이션 감독이자 <라따뚜이 Ratatouille(2007)>에서 레미의 형 에밀 목소리 연기를 한 목소리 연기자이자 <니모를 찾아서 Finding Nemo(2003)><인크레더블 The Incredibles(2004)> 등의 스토리 아티스트이자 애니메이터인 피터 손 Peter Sohn의 두 번째 장편 연출작입니다.
넷플릭스 영화 <반쪽의 이야기 The Half of It(2020)> 등에 출연한 중국계 미국 배우 레아 루이스 Leah Lewis, 넷플릭스 영화 <와인을 딸 시간 Uncorked(2020)>과 <쥬라기 월드: 도미니언 Jurassic World Dominion(2022)> 등에 출연한 미국 배우 마머두 아체이 Mamoudou Athie, 필리핀 애니메이터이자 목소리 연기자인 로니 델 카르멘 Ronnie del Carmen, 미국 배우이자 감독이자 각본가이자 제작자인 셰일라 옴미 Shila Ommi, 미국 배우이자 코미디언 웬디 맥렌던 커비 Wendi McLendon-Covey, <나홀로 집에 Home Alone> 프랜차이즈(1990~1992)와 <유령수업 Beetlejuice(1988)> 등으로 유명한 캐나다-미국 배우 캐서린 오하라 Catherine O'Hara 등이 목소리 연기를 맡았습니다.
불, 물, 공기와 흙 등 자연을 구성하는 원소들을 의인화하여, 특히 결코 하나가 될 수 없는 원소인 불과 물이 어떤 연관을 가진다는 발상에서 시작한 <엘리멘탈(2023)>은 실제 1970년대 뉴욕 이민 가족에서 성장한 피터 손 감독 자신의 어린 시절의 경험을 토대로, <초대받지 않은 손님 Guess Who's Coming to Dinner(1967)><문스트럭 Moonstruck(1987)><아멜리에 Le Fabuleux Destin d'Amélie Poulain(2001)> 등의 로맨스 영화에서 영감을 얻어 스토리를 구축했습니다.
여기에 미국 작곡가 토머스 뉴먼 Thomas Newman이 <니모를 찾아서(2003)><월-E WALL-E(2008)><도리를 찾아서 Finding Dory(2016)>에 이어 픽사 장편 애니메이션에 4번째 참여해 오리지널 스코어를 작곡했습니다.
지난 2023년 5월 27일, 76회 칸영화제 폐막작으로 전 세계 최초 공개된 <엘리멘탈(2023)>은 2023년 6월 14일 한국에서 개봉, 첫 주말 전국 관객수 42만 명으로 박스오피스 2위로 데뷔했고, 북미에서는 이보다 이틀 뒤인 6월 16일 북미 4,035개 극장에서 개봉, 첫 주말 누적 수익 2,960만 달러(약 380억 원)로 박스오피스 2위로 데뷔했으나 이는 1995년 개봉한 픽사 첫 번째 영화인 <토이 스토리 Toy Story(1995)>의 오프닝 성적인 2,910만 달러를 조금 웃도는 수준으로 28년의 시간 차를 감안했을 때 픽사 영화 중 가장 낮은 오프닝으로 기록될 정도의 실망스러운 성적입니다.
어떤 내용이길래
불 원소 버니(로니 델 카르멘)와 신더 루멘(셰일라 옴미)은 엘리멘트 시티로 이주하지만, 불 원소에 대한 물, 흙, 공기 원소의 혐오를 견디며 새로운 삶의 터전을 찾기 위해 고군분투합니다. 둘 사이에 딸 엠버가 태어나고, 버니는 잡화점 '파이어 플레이스'를 열어 불 원소의 유산과 전통을 상징하는 푸른 불꽃을 소중하게 모시며 열심히 경영한 결과, 점점 더 많은 불 원소 고객들이 찾아 매장은 성황을 이룹니다.
엠버(레아 루이스)가 성장하면서, 버니는 장차 가게를 엠버에게 물려줄 생각을 품고 있지만 다혈질의 성격으로 화를 잘 참지 못하는 엠버의 성향이 걱정스럽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버니는 엠버에게 고객들을 직접 응대하도록 하지만, 이것저것 요구사항이 많은 고객들의 성화 때문에 분을 못 이긴 엠버는 지하창고로 급하게 피신합니다.
화가 잔뜩 난 엠버의 분노가 폭발하여 수도관이 터져버리고, 터진 수도관을 통해 지하실은 금세 물바다로 변해 버립니다. 그리고 물살을 타고 등장한 엘리먼트 시티 시청 조사관인 물 원소 웨이드 리플(마머두 아체이)은 배관에서 심각한 결함을 발견하고는 이를 자신의 상사인 공기 원소 게일 쿠물러스(웬디 맥렌던 커비)에게 보고하고, 게일이 위반 사항에 대해 알게 되는 날이면 파이어 플레이스는 폐업될 것입니다. 이를 알게 된 엠버는 아버지 버니가 평생 일궈 온 소중한 사업장이 없어지는 것을 막기 위해 웨이드의 뒤를 쫓지만, 이미 게일에게 보고서가 전달된 후였습니다.
자신의 화로 인해 벌어진 기막힌 상황에 대한 자책감이 든 엠버는 커다란 상심에 빠지게 되고 이를 본 웨이드는 측은함을 느껴, 에어볼 팀 '윈드브레이커'의 광팬인 게일이 플레이오프 관람을 위해 가 있는 사이클론 스타디움으로 엠버를 데리고 가 게일을 설득하도록 돕습니다. 파이어 플레이스의 배관에서 발견된 문제에 뭔가 근본적인 원인이 있을 것이라며 게일을 설득해 폐업 결정을 늦추는 데 성공한 웨이드와 엠버는 누수의 근원을 찾기 위해 둘이 힘을 합치기로 합니다.
참신한 설정을 공기처럼 허공에 날려버린 진부한 각본
<엘리멘탈(2023)>은 1995년 이후 30년 가까운 시간 동안 애니메이션 업계를 주도해 온 픽사와 디즈니의 27번째 협업작으로 애초에 프로젝트가 발표된 순간부터 전 세계의 관심을 받을 수밖에 없는 소위 '금수저' 프로젝트임은 부정할 수 없습니다. 칸영화제 폐막작으로 첫 공개된 후 쏟아진 의외의 혹평 자체가 의외였던 것은, 기본 콘셉트만 들었을 때엔 이보다 더 참신할 수 없을 것 같은 기발한 아이디어와 픽사의 장인 정신이 합쳐진 이 영화에서 흠잡을 데가 어디 있을지가 궁금할 지경이었습니다.
그렇게 혹평에 대한 의아한 궁금증을 품고 보게 된 <엘리멘탈(2023)>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진부했습니다. 현란한 테마파크를 연상시키는 엘리멘트 시티의 전체적인 디자인과 불, 물, 흙, 공기 등 자연 원소를 의인화한 캐릭터 디자인, 그리고 픽사 영화에서 빠질 수 없는 세세한 디테일은 역시 명불허전이었습니다.
하지만 이민 가족 혹은 특정 부류에 대한 혐오의 대상으로 설정된 불 원소와 부유한 상류층으로 설정된 물 원소의 이분법적 설정은 이미 이전에 수없이 많은 영화와 드라마에서 반복된 이야기를 또다시 반복하는 데 그치며, '물불 안 가리는 로맨스'의 기승전결 자체가 아무 매력을 가지지 못하게 만들어 버렸습니다.
특히 불 원소 엠버는 분노를 참지 못하는 욱하는 성격에 다른 원소들로부터 배척당하는 특정 그룹으로 분류된 데다 워킹 클래스를 대변하는 이른바 비(非) 상류층으로 묘사되어, 상류층으로 분류된 물 원소 웨이드 가족의 도움으로 새로운 직업의 세계에 눈뜨고 진로를 찾아간다는 일종의 '노블레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 클리셰를 반복합니다.
불 원소를 대표하는 단어 'hot'의 '뜨겁다, 맵다'의 중의적 표현을 백분 활용하여 불 원소가 즐기는 음식의 뜨거운 혹은 매운맛이라던가 엔딩 시퀀스에서 엠버가 부모에게 난데없이 큰절을 올리는 등 특정 국가를 언급하지는 않지만 감독인 피터 손이 한국계 이민 가정 출신임을 감안했을 때 극 중 불 원소는 미국에 정착한 한국인을 상징하는 것을 알 수 있는데요. 이러한 묘사에 공감할 수는 있겠지만 좀 더 참신하고 새로운 이야기를 기대했던 것에 비하면 역시 이전에 수도 없이 봐왔던 유사한 소재를 다룬 영화들과의 차별점을 찾기란 어려웠습니다.
[영화 정보]
국내 제목: 엘리멘탈(2023)
원제: Elemental
제작국가: 미국
감독: 피터 손
캐스트: 레아 루이스, 마머두 아체이, 로니 델 카르멘, 셰일라 옴미, 웬디 맥렌던 커비, 캐서린 오하라 등
장르: 애니메이션/로맨스/코미디
러닝타임: 109분
관람등급: 전체 관람가
개봉일: 2023년 6월 14일(한국)/2023년 6월 16일(미국)
주요 수상내역:
2023년 76회 칸영화제 폐막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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