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이닝(1980) - 광기(狂氣)의 또 다른 이름
※ 글 내용 중에 영화 <샤이닝(1980)>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미국 감독이자 제작자, 각본가이자 사진작가였던 스탠리 큐브릭 Stanley Kubrick(1928~1999)의 11번째 장편 연출작인 <샤이닝 The Shining(1980)>은 장르 문학의 대가로 일컬어지는 미국 작가 스티븐 킹 Stephen King이 1977년 발표한 같은 제목의 소설을 미국 소설가 다이앤 존슨 Diane Johnson과 큐브릭이 각색한 공포 스릴러입니다.
1958년 데뷔 후,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 One Flew Over the Cuckoo's Nest(1975)>로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수상한 잭 니콜슨 Jack Nicholson이 잭 토렌스 역할을 맡을 배우로 큐브릭이 가장 원한 배우였다는데요. 로버트 드 니로 Rovert De Niro, 로빈 윌리엄스 Robin Williams(1951~2014), 해리슨 포드 Harrison Ford 등도 물망에 올랐으나 원작자인 스티븐 킹이 모두 거절한 배우들이었습니다.
<내쉬빌 Nashville(1975)><세 여인 3 Women(1977)><애니 홀 Annie Hall(1977)> 등에 출연한 셸리 듀발 Shelley Duvall이 잭의 아내 웬디를 연기했는데요. 만약 <뽀빠이 Popeye(1980)>에서 뽀빠이를 연기한 로빈 윌리엄스가 잭 토렌스 역에 캐스팅되었었다면, 올리브 역을 맡은 듀발과는 연이어 함께 연기한 셈이 되었을 수도 있습니다.
웬디 역에는 니콜슨이 차기작 <포스트맨은 벨을 두 번 울린다 The Postman Always Rings Twice(1981)>에 함께 출연하기로 한 제시카 랭 Jessica Lange을 추천하기도 했다는데요. 촬영 기간 내내 큐브릭이 듀발을 강하게 밀어붙여 영화 속 겁에 질린 웬디의 모습은 실제 듀발이 겁에 질린 상태였음이 한참 후에 밝혀지게 되어, 걸작을 만들기 위해 감독이 배우를 어느 정도까지 몰아붙일 수 있을지에 대한 논란과 우려가 일기도 했습니다. 극 중에서 웬디가 야구방망이를 잭에게 휘두르며 뒷걸음질 치는 장면은 무려 127번이나 반복 촬영되어 기네스북에 등재될 정도였습니다.
잭과 웬디의 아들 대니 역에 큐브릭이 캐스팅하려던 배우는 <미지와의 조우 Close Encounters of the Third Kind(1977)>에 출연한 캐리 구피 Cary Guffey였으나 캐리의 부모가 강하게 반대하여 좌절되었고, 이후 5,000명이 넘는 어린이 배우를 반년동안 찾아 헤맸는데요. 뉴저지 출신의 잭 니콜슨과 텍사스 출신 셸리 듀발, 각각의 억양의 중간쯤을 구사할 수 있는 어린이 배우인 1972년생 대니 로이드 Danny Lloyd가 캐스팅되었습니다.
로이드는 촬영기간 내내 큐브릭의 특별 보호를 받으며, 촬영하고 있는 영화가 공포 영화가 아닌 드라마 영화로 인지하고 촬영에 임했다고 합니다. <샤이닝(1980)>으로 특별하게 데뷔한 로이드는 2년 후 TV영화 <윌: G. 고든 리디 Will: G. Gordon Liddy(1982)> 한 편에만 더 출연한 후 더 이상 연기를 하지 않고, 과학자의 길을 걷고 있는데요. 그러다 <샤이닝(1980)>의 속편 <닥터 슬립 Doctor Sleep(2019)>에 카메오로 출연했습니다.
극 중 대니와 같이 말하지 않아도 상대방의 마음을 읽을 수 있는 '샤이닝' 능력을 가진, 오버룩 호텔의 수석 셰프 딕 할로랜 역에는 미국 배우이자 뮤지션이었던 스캣맨 크로더스 Scatman Crothers(1910~1986)가 캐스팅되었고, 그 외에 배리 넬슨 Barry Nelson(1917~2007), 필립 스톤 Philip Stone(1924~2003), 조 터켈 Joe Turkel(1927~2022), 앤 잭슨 Anne Jackson(1925~2016), 토니 버튼 Tony Burton(1937~2016) 등이 출연했습니다.
<샤이닝(1980)>을 대표하는 장면 중 하나인 호텔 복도에서 대니 앞에 등장하는 그레이디 자매를 연기한 리사와 루이즈 번즈 Lisa and Louise Burns(1968~)는 실제 일란성쌍둥이 자매인데요. 희한하게도 원작이나 영화 속에서 그레이디 자매에 대한 묘사는 쌍둥이가 아님에도(얼먼이 '대략 8살과 10살 자매'라고 언급), 쌍둥이 자매를 캐스팅했습니다.
1980년 당시 1,900만 달러(현재 환율 기준 - 약 249억 원)가 투입된 <샤이닝(1980)>의 촬영은 대부분 영국 EMI 엘스트리 스튜디오에 실제 호텔과 똑같이 제작된 세트에서 진행되었는데요. 큐브릭은 적은 규모의 스태프와 일한 경우가 있었는데, 반복해서 같은 장면을 촬영하는 일들이 허다했기 때문에 스태프와 배우들을 진 빠지게 만들었습니다.
<샤이닝(1980)>에서는 새로운 스테디캠 촬영기법이 여러 장면에서 사용되기도 했는데요. 이로 인해 이전과는 다른 혁신적인 영상으로 관객에게 좀 더 몰입감을 느끼게 해 주었습니다.
1980년 5월 23일, <스타워즈 에피소드 5-제국의 역습 Star Wars: Episode V - The Empire Strikes Back(1980)>과 같은 날 북미 10개 극장에서 개봉, 4일 연휴 주말 수익 622,337 달러(약 8억 1,650만 원)를 기록, 50개 미만 극장에서 개봉한 영화 중 3번째로 높은 오프닝 수익을 기록했는데요. 앞선 두 작품은 <스타워즈 에피소드 4-새로운 희망 Star Wars: Episode IV - A New Hope(1977)>와 베트 미들러 Bette Midler 주연의 <로즈 The Rose(1979)>입니다.
결국 <샤이닝(1980)>의 전 세계 박스오피스 최종 누적 수익은 4,735만 달러(약 621억 원)로 제작비 대비 2.5배가량의 수익을 거뒀습니다.
북미에서 프리미어 때 공개한 버전은 146분(2시간 26분)이었으나, 입원한 웬디를 찾아온 얼먼이 결국 잭 토렌스의 시체를 찾지 못했다고 전하고, 호텔 근처에서 잭이 던졌던 노란색 테니스 공을 대니에게 건네는 병원 장면을 드러내어, 프리미어 버전보다 2분 줄어든 144분(2시간 24분) 버전으로 본격 개봉했고, 5개월 후 영국을 비롯한 유럽에서는 이보다 25분을 더 줄인 119분(1시간 59분) 버전으로 개봉했습니다.
1981년 3월 31일 열린 1회 골든 라즈베리 어워즈에서 큐브릭은 최악의 감독상, 듀발은 최악의 여우주연상 후보에 올랐는데요. 그로부터 41년 후인 지난 2022년, 골든 라즈베리 어워즈에서는 셸리 듀발이 미국 엔터테인먼트 웹사이트 《벌처 Vulture》와의 인터뷰에서 <샤이닝(1980)> 실제 촬영 당시 현장에 큐브릭이 자신을 심하게 몰아붙였다는 사실을 밝히자, 뒤늦게나마 듀발의 최악의 여우주연상 노미네이션을 철회했습니다.
<샤이닝(1980)>이 개봉한 지 39년이 지난 2019년, 35mm 오리지널 네거티브 필름을 새로 스캔해 제작한 4K 리마스터링 버전이 2019년 72회 칸영화제 칸 클래식 부문에 초청되어 상영했습니다.
스티븐 킹은 1977년 발표한 <샤이닝(1980)>의 원작 소설의 속편을 2013년 발표했고, 이를 각색한 속편 영화 <닥터 슬립 Doctor Sleep(2019)>이 전편 제작 후 39년이 지나 제작되었습니다. 이완 맥그리거 Ewan McGregor가 어린 시절 오버룩 호텔에서 겪었던 트라우마에 시달리는 성인이 된 댄 토렌스를 연기했고, <오큘러스 Oculus(2013)> 등을 연출한 마이크 플래네건 Mike Flanagan이 연출했습니다.
<샤이닝(1980)>은 지난 2018년, 존 포드 John Ford(1894~1973) 감독의 <밀고자 The Informer(1935)>, 알프레드 히치콕 Alfred Hitchcock(1899~1980) 감독의 <레베카 Rebecca(1940)>, 오손 웰스 Orson Welles(1915~1985) 감독의 <상하이에서 온 여인 The Lady from Shanghai(1947)>, 조지 큐커 George Cukor(1899~1983) 감독의 <마이 페어 레이디 My Fair Lady(1964)>, 스탠리 큐브릭 Stanley Kubrick(1928~1999) 감독의 <샤이닝 The Shining(1980)>, 스티븐 스필버그 Steven Spielberg 감독의 <쥬라기 공원 Jurassic Park(1993)>, 리안(李安) Ang Lee 감독의 <브로크백 마운틴 Brokeback Mountain(2005)> 등과 함께 미국 의회도서관 영구보존 영화로 선정되었습니다.
어떤 내용이길래
잠시 교편을 잡다가 새로운 작품을 구상 중인 소설가 잭 토렌스(잭 니콜슨)는 콜로라도주(州) 록키 산맥 외진 곳에 있는 오버룩 호텔이 영업을 중단하는 겨울 동안 호텔에 머물며 전반적인 관리를 담당하는 자리의 면접을 보러 오버룩 호텔을 찾습니다. 잭을 만난 호텔 총괄 매니저 스튜어트 얼먼(배리 넬슨)은 전임자였던 찰스 그레이디가 자신의 아내와 두 딸을 살해하고 자신도 자살했다는 이야기를 잭에게 들려주며, 겨울 동안 고립된 장소에서 지내는 일이 결코 쉽지 않다는 우려를 표하지만 잭은 자신과는 전혀 관계없는 일이라며 얼먼의 걱정을 단숨에 날려버립니다.
잭이 면접을 보는 동안 볼더에 있는 잭의 아내 웬디(셸리 듀발)가 아들 대니(대니 로이드)가 상상의 친구 토니와 대화를 나눈다던가 환영을 보고 발작을 일으키는 증상이 걱정되어 대니를 의사(앤 잭슨)에게 데려갑니다. 대니의 상태를 본 의사는 대니의 상태가 지극히 정상이라며 웬디를 안심시키지만, 웬디는 대니에게 이상증세가 나타나기 시작한 시점이 과거 잭이 교사 일을 하던 즈음에 학생들의 시험지를 대니가 흩트려놓은 것을 보고, 만취 상태에서 대니를 강하게 뜯어말리다가 대니의 어깨가 탈구되었던 적이 있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잭은 그날 이후 술을 끊었다고도 덧붙입니다.
얼마 후, 잭과 웬디, 대니는 휴업을 앞두고 직원들이 분주하게 업무를 마무리 중인 오버룩 호텔에 도착하고, 수석 셰프 딕 할로랜(스캣맨 크로더스)이 대니를 보자마자 말하지 않아도 상대방에 대해 알아채는 '샤이닝' 능력이 대니에게 있음을 알아차립니다. 할로랜은 대니에게 과거 일어났던 어떤 사건으로 오버룩 호텔 자체에도 '샤이닝' 능력이 있다면서, 237호 객실은 절대 피해야 한다고 경고합니다.
1달 후, 텅 빈 호텔 복도를 오가며 노닐던 대니의 눈에 무시무시한 환영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그중에는 살해당한 두 어린이 자매의 모습도 있습니다. 그러는 사이, 타자기 앞에 붙어 앉아 종일 글만 써대는 잭은 점점 더 예민해지고 신경질적으로 변해 있습니다. 자신이 웬디와 대니를 살해하는 악몽에 시달리는가 하면, 글을 잘 쓰고 있는지 궁금해서 자신의 곁에 다가온 웬디에게 폭언을 퍼부으며 자신을 내버려 두라고 윽박지릅니다.
서스펜스로 가득한 144분의 공포체험
무슨 일이 벌어질 것만 같은 텅 빈 대형 호텔 안에서 눈을 희번덕거리는 잭 니콜슨의 광기 어린 표정만으로도 이미 공포영화 한 편이 뚝딱 완성되는 듯한데, 거기에 공포영화의 두려움을 두 배로 늘리는 어린이 배우 대니 로이드의 말간 표정에 담긴 섬뜩함과 실제 큐브릭으로부터 학대당하다시피 하며 카메라 앞에 섰던 셸리 듀발이 느꼈을 실제 공포가 어우러져, 영화 <샤이닝(1980)>은 뒷맛이 개운하지는 않지만, 작품 자체로는 더없이 완벽한 걸작 공포영화로 길이 기억되고 있습니다.
[영화 정보]
국내 제목: 샤이닝(1980)
원제: The Shining
제작국가: 미국/영국
감독: 스탠리 큐브릭
캐스트: 잭 니콜슨, 셸리 듀발, 대니 로이드, 스캣맨 크로더스 등
장르: 공포/스릴러
러닝타임: 144분
관람등급: 청소년 관람불가
개봉일: 2023년 6월 28일(한국 재개봉)/2019년 1월 3일(한국 재개봉)/1980년 5월 23일(미국)
주요 수상내역:
1981년 8회 새턴 어워즈 남우조연상 수상(스캣맨 크로더스)
1981년 8회 새턴 어워즈 4개 부문 노미네이트 - 호러 영화상, 감독상, 남우조연상(스캣맨 크로더스), 음악상
1981년 1회 골든 라즈베리 어워즈 최악의 감독상 노미네이트
※ 셜리 듀발의 최악의 여우주연상 부문 노미네이션은 셜리 듀발의 <샤이닝>에서의 연기가 촬영장에서 스탠리 큐브릭의 학대로 인해 벌어진 결과물이었음을 인지한 주최 측에서 지난 2022년 후보 지명 철회를 발표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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