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대 이후 근소한 차이로 오스카를 놓친 배우와 감독 10명
100년 가까운 긴 역사를 가진, 할리우드 최고의 권위를 자랑하는 아카데미 시상식 Academy Awards는 각 부문 후보가 발표부터 수상자의 이름이 불리는 순간까지 예측을 깜짝 놀라는 결과가 매년 반복됩니다.
그중에서도 1990년대 이후 남녀주연상과 조연상, 감독상 부문에 오른 후보들 가운데, 오스카 레이스라 불리는 아카데미 시상식 이전에 열리는 주요 시상식을 거의 휩쓸다시피 하며 아카데미상 수상이 곧 현실이 될 것 같았으나, 예상을 벗어난 경쟁자의 이름이 봉투 안에 들어있었던 바람에, 눈앞에서 오스카를 놓친 아까운 후보들을 제 맘대로 10명 꼽았습니다.
2019년 91회 여우주연상
2019년 2월 24일 열린 91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가장 마음 쓰였던 부문은 단연 여우주연상이었습니다.
10개 부문에 노미네이트 되어 그해 최다 후보작이었던 <로마 Roma(2018)>와 <더 페이버릿: 여왕의 여자 The Favourite(2018)>을 제치고 <그린북 Green Book(2018)>이 작품상을 수상하면서 결과에 따른 찬반양론이 뜨겁게 타올랐고, <로마(2018)>의 알폰소 쿠아론 Alfonso Cuarón이 <그래비티 Gravity(2013)>에 이어 두 번째 아카데미 감독상을 수상하면서 스포트라이트를 한 몸에 받았지만, 통산 7번째 후보 지명이자 <앨버트 놉스 Albert Nobbs(2011)> 이후 7년 만에 노미네이트 된 글렌 클로즈 Glenn Close가 과연 이번에는 오스카를 품에 안을 수 있을지가 가장 큰 관심사였기 때문입니다.
아카데미상은 여느 부문이나 다 마찬가지지만, 대진운이 결과에 커다란 영향을 미칩니다. 아니면, 아예 후보 자신이 오스카 레이스에서 손꼽히는 이전 시상식을 거의 다 싹쓸이해 버리면 무난하게(?) 오스카를 거머쥐게 됩니다.
글렌 클로즈의 그해 오스카 레이스 전적은 오스카 수상을 100% 확신하기에는 다소 아쉬웠는데요. 오스카 결과에 대한 영향력이 전과 같지 않지만, 그래도 골든 글로브 드라마 부문을 수상했고, 미국 배우조합 SAG와 크리틱스 초이스를 받았기에, 골든 글로브 뮤지컬 코미디 부문과 영국 아카데미 BAFTA를 수상한 올리비아 콜먼 Olivia Colman과의 2파전에서 다소 우위를 차지한 듯했습니다.
크리틱스 초이스가 단독 수상이 아닌, <스타 이즈 본 A Star Is Born(2018)>의 레이디 가가 Lady Gaga와 공동수상이었다는 점이 조금 걸리긴 했었지만, BAFTA까지 받았다면 좀 더 확실한 우위를 차지했을 것이란 미련도 남아 있었지만, 캐롤리나 헤레라 Carolina Herrera의 황금빛 찬란한 드레스를 입고 레드 카펫에 들어선 클로즈의 자태를 본 순간, '아, 이번 오스카는 자신의 것이라는 확신이 있나 보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습니다.
대진운에 있어서 워낙 콜먼과의 2파전 양상이기는 했던 것이, 함께 후보에 올랐던 배우들 가운데 크리틱스 초이스를 클로즈와 공동 수상한 레이디 가가와 <날 용서해 줄래요? Can You Ever Forgive Me?(2018)>의 멜리사 맥카시 Melissa McCarthy, 두 배우 모두 더없이 훌륭한 연기를 선보였지만 역시 2파전 이상의 대결 구도로 확장하기엔 다소 무리가 있어 보였고, <로마(2018)>의 얄리차 아파리치오 Yalitza Aparicio의 노미네이션은 그해의 서프라이즈로 꼽힐 만큼 깜짝 이벤트에 가까웠기에 역시 클로즈와 콜먼의 2파전 양상은 굳건했습니다.
전통대로였다면, 전년도 90회 아카데미 남우주연상 수상자인 <다키스트 아워 Darkest Hour(2017)>의 게리 올드먼 Gary Oldman이 91회 여우주연상 발표와 시상을 맡았겠지만, 올드먼은 90회 여우조연상 수상자였던 <아이, 토냐 I, Tonya(2017)>의 앨리슨 재니 Allison Janney와 함께 91회 남우주연상의 시상자로 등장했고, <쓰리 빌보드 Three Billboards Outside Ebbing, Missouri(2017)>로 90회 여우주연상과 남우조연상을 수상한 프랜시스 맥도먼드 Frances McDormand와 샘 록웰 Sam Rockwell이 91회 여우주연상 시상자로 나섰습니다.
수상자의 이름이 적힌 봉투가 열리고, 그 안에는 올리비아 콜먼의 이름이 적혀있었습니다. 결국 글렌 클로즈는 7번째 도전에도 수상에 실패했고, 콜먼의 이름이 불리는 순간, 프로페셔널이기에 크게 티 내지 못하면서도 눈가에 아쉬움이 스쳤습니다.
2002년 74회 여우주연상
<반지의 제왕: 반지원정대 The Lord of the Rings: The Fellowship of the Ring(2001)>가 13개 부문 후보에 올라 그해 최다 부문 후보작이었고, <뷰티풀 마인드 A Beautiful Mind(2001)>가 작품상을 수상했던 74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유난히 수상자를 점치기에 어려웠던 부문이 여우주연상이었습니다.
컨트리 가수 로레타 린 Loretta Lynn을 연기한 <광부의 딸 Coal Miner's Daughter(1980)>로 53회 여우주연상을 수상했던 씨시 스페이섹 Sissy Spacek이 <크라임 오브 하트 Crimes of the Heart(1986)>로 통산 다섯 번째 후보에 오른 이후 15년 만에 여섯 번째 노미네이션 되었고, 두 번째 오스카에 도전했었는데요.
오스카 전초전 가운데 오스카의 결과에 상당한 영향력을 끼쳤던 골든 글로브 드라마 부문 여우주연상을 받았고, 크리틱스 초이스 어워즈와 뉴욕, 로스앤젤레스 영화평론가협회상 등을 받으며, 오랜만에 아카데미 후보에 이름을 올린 스페이섹에게 두 번째 오스카가 수여된다고 해도 크게 반발하지 않을 듯 보였습니다. 더군다나 스페이섹을 후보에 올린 <인 더 베드룸 In the Bedroom(2001)>은 그해 작품상 후보에 오르기도 했거든요.
대진운도 그렇게 불리해 보이지 않았습니다. <아이리스 Iris(2001)>의 주디 덴치 Judi Dench는 BAFTA를 수상했고, <물랑루즈 Moulin Rouge!(2001)>의 니콜 키드먼 Nicole Kidman은 골든 글로브 뮤지컬 코미디 부문에서 상을 받았고, <몬스터 볼 Monster's Ball(2001)>의 할리 베리 Halle Berry는 내셔널 보드 오브 리뷰 어워즈와 SAG를 수상했었고, <브리짓 존스의 일기 Bridget Jones's Diary(2001)>의 Renée Zellweger가 다섯 번째 후보로 이름을 올렸습니다.
이중 스페이섹과 덴치는 이전에 이미 오스카를 수상한 적 있는 배우들이었고, 키드먼, 베리, 젤위거는 첫 후보 지명이었습니다. 오스카 레이스 자체가 워낙 혼전이었기에, 사실 스페이섹이 단연 앞서가는 분위기였다기 보다는 혼전 양상 그 자체였습니다.
<글래디에이터 Gladiator(2000)>로 전년도 73회 남우주연상을 수상한 러셀 크로 Russell Crowe가 시상자로 등장했고, 시상자와 후보자의 친분이 절대적 영향을 끼치는 것은 아니지만, 크로와 키드먼이 오랜 우정을 나눈 사이임을 생각하면 혹시 봉투 안에 키드먼의 이름이 있을지도 모를 일이었습니다.
그리고 결과는 할리 베리의 이름이 불렸고, 아카데미 74년 역사상 최초로 아프리칸 아메리칸 여성 배우가 여우주연상을 수상하는 첫 번째 배우가 되었습니다. 아쉽게도 씨시 스페이섹은 두 번째 오스카 수상 대신, 아카데미의 새로운 역사를 쓴 할리 베리에게 축하의 박수를 보내야 했습니다.
1996년 68회 여우주연상
1996년 3월 25일 열린 68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10개 부문 후보에 올라 그해 최다 부문 후보작인 <브레이브하트 Braveheart(1995)>가 과연 몇 개 부문에서 수상할 지에 대한 관심보다는, 과연 그해 여우주연상의 주인공은 누가 될 것인지가 훨씬 더 궁금했습니다.
이미 두 개의 오스카를 받은 적 있는 메릴 스트립 Meryl Streep이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 The Bridges of Madison County(1995)>로 통산 10번째 노미네이션을 기록한 상태였으나, 오스카 레이스에서 눈에 띄는 수상이 없었기에 크게 위협적인 상태는 아니었습니다.
역시 아카데미 여우주연상 수상 경력이 있고, 그해 BAFTA와 NBR에서 수상한 엠마 톰슨 Emma Thompson이 <센스, 센서빌리티 Sense and Sensibility(1995)>로 두 번째 수상을 노리고 있었지만, 각색상 후보에도 오르면서 수상 가능성은 여우주연상보다는 각색상 쪽으로 치우친 상황이었습니다.
그렇다면 로스앤젤레스와 전미 평론가협회상 등을 수상한 <라스베가스를 떠나며 Leaving Las Vegas(1995)>의 엘리자베스 슈 Elisabeth Shue에게 새로운 기회가 올지도 모를 일이었지만, 평론가들로부터의 극찬이 오스카 수상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아주 높아 보이지는 않았습니다. 오히려 함께 출연한, 그리고 결국 남우주연상을 수상하게 된 니콜러스 케이지 Nicolas Cage 쪽으로 무게 중심이 더욱 실린 듯하기도 했습니다.
결국 SAG를 수상한 <데드 맨 워킹 Dead Man Walking(1995)>의 수잔 서랜든 Susan Sarandon과 골든 글로브 드라마 부문에서 수상한 <카지노 Casino(1995)>의 샤론 스톤 Sharon Stone의 2파전으로 압축되었다고 해도 무리는 아니었고, 두 배우가 보여준 연기는 그들 생애 최고의 연기 중 하나로 손꼽기에 주저함이 없을 정도라, 두 배우 중 누가 수상하더라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였는데요.
<필라델피아 Philadelphia(1993)>와 <포레스트 검프 Forrest Gump(1994)>로 2년 연속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수상한 톰 행크스 Tom Hanks가 들고 나온 봉투 속에 새겨진 이름은 수잔 서랜든이었고, <애틀랜틱 시티 Atlantic City(1981)><델마와 루이스 Thelma & Louise(1991)><로렌조 오일 Lorenzo's Oil(1992)><의뢰인 The Client(1994)>에 이어 다섯 번째 후보 지명 끝에 드디어 오스카 수상자로 등극했습니다.
2014년 86회 여우조연상
각 10개 부문 후보에 오른 <아메리칸 허슬 American Hustle(2013)>과 <그래비티 Gravity(2013)>, 그리고 결국 작품상을 수상한 <노예 12년 12 Years a Slave(2013)> 등 화려한 라인업이 인상적이었던 2014년 86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가장 큰 관심사는 과연 <실버 라이닝 플레이북 Silver Linings Playbook(2012)>으로 전년도 85회 여우주연상을 수상했던 제니퍼 로렌스 Jennifer Lawrence가 <아메리칸 허슬(2013)>로 86회 여우조연상을 수상하면서, 2년 연속 수상이라는 기록을 세울 수 있을지 여부였습니다.
골든 글로브와 BAFTA, 뉴욕과 전미 평론가협회상 등을 수상하면서 어쩌면 실제로 그 일이 일어날지도 모른다는 기대감이 커졌는데요. 물론 변수가 없지는 않았죠. SAG와 크리틱스 초이스를 수상한 <노예 12년(2013)>의 루피타 뇽오 Lupita Nyong'o가 가장 강력한 적수였습니다.
함께 후보에 올랐던 <블루 재스민 Blue Jasmine(2013)>의 샐리 호킨스 Sally Hawkins, <오거스트: 가족의 초상 August: Osage County(2013)>의 줄리아 로버츠 Julia Roberts, <네브라스카 Nebraska(2013)>의 준 스큅 June Squibb 모두 훌륭한 연기였지만, 그해 여우조연상 부문은 로렌스와 뇽오, 두 배우의 각축전으로 좁혀졌습니다.
그해 따라 여우조연상 시상이 시상식 중반 이후로 다른 때보다 늦게 진행되었고, <장고: 분노의 추적자 Django Unchained(2012)>로 두 번째 오스카 남우조연상을 수상한 크리스토프 발츠 Christoph Waltz가 시상자로 등장했습니다. 그리고 발츠가 봉투를 열고 부른 이름은, 루피타 뇽오! 제니퍼 로렌스의 2년 연속 오스카 수상은 그렇게 현실로 이뤄지지 못했습니다.
2021년 93회 남우주연상
COVID-19 팬데믹의 기세가 등등해 전 세계가 위축되어 있던 2021년. 93회 아카데미 시상식은 예년보다 조금 늦은 4월 25일, 기존의 후보 자격인 북미 개봉일 범위를 2020년 1월 1일부터 2021년 2월 28일로 늘려, 개최 장소도 로스앤젤레스 유니언 스테이션으로 옮겨 치르게 되었습니다.
마스크를 착용하고 자리 잡은 후보들의 면면에서도 팬데믹의 스산한 기운이 여실히 드러났지만, 어쨌든 아카데미의 명맥을 유지하기 위한 주최 측의 몸부림은 이어졌습니다.
그 가운데, 그해 최고의 스포트라이트는 아무래도 작품상 수상작이 된 <노매드랜드 Nomadland(2020)>나 아카데미 역사상 아카데미 감독상을 수상한 두 번째 여성감독이 된 <노매드랜드(2020)>의 클로이 자오(趙婷) Chloé Zhao, <나를 찾아줘 Gone Girl(2014)> 이후 6년 만의 신작 <맹크 Mank(2020)>로 10개 부문 후보에 올랐던 데이비드 핀처 David Fincher를 위해 준비된 것이 아니었습니다.
늘 맨 마지막에 진행하던 작품상 시상을 여우주연상과 남우주연상보다 앞서 진행하면서, 파격적인 순서 편성이 있었는데요. 그 모든 것은 2020년 8월 28일, 43세의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난 채드윅 보즈먼 Chadwick Boseman이 유작 <마 레이니, 그녀가 블루스 Ma Rainey's Black Bottom(2020)>으로 사후(死後) 남우주연상 후보가 되었고, 골든 글로브 드라마 부문과 SAG, 크리틱스 초이스 등 오스카 레이스의 주요 시상식을 휩쓸다시피 하면서 가장 강력한 수상 후보였기 때문이었습니다.
보즈먼의 가장 강력한 상대는 BAFTA를 수상한 <더 파더 The Father(2020)>의 앤소니 홉킨스 Anthony Hopkins였는데요. 홉킨스는 이미 <양들의 침묵 The Silence of the Lambs(1991)>로 64회 남우주연상을 수상했었고, <더 파더(2020)>로 후보에 오른 것은 통산 여섯 번째 노미네이션이었는데요. 80대가 넘은 고령이어서였는지 그해 시상식 참석을 위해 영국에서부터 먼 여행을 하지도 못해 유니언 스테이션에 자리 잡고 앉아있지도 못한 상황이었습니다.
시상자는 전년도 <조커 Joker(2019)>로 92회 남우주연상을 수상했던 호아킨 피닉스 Joaquin Phoenix가 등장했고, 모두가 보즈먼의 이름이 불릴 것이라 예상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피닉스의 손에 있던 봉투 안에는 보즈먼의 이름 대신 홉킨스의 이름이 적혀 있었고, 뭔가 감동적인 엔딩을 위해 남우주연상 시상을 맨 뒤로 배치했던 제작진의 바람과 달리, 시상식에 참석하지 못한 홉킨스에게 오스카를 대신 전달하겠다는 피닉스의 마무리 멘트와 함께 시상식은 황급히 끝났습니다.
시상식 다음 날, 홉킨스는 웨일스 자택에서 인스타그램을 통해 수상 소감을 전했고, <양들의 침묵(1991)>에 이어 두 번째 오스카를 수여받음은 물론, 수상 당시 나이 83세로 아카데미 역사상 연기상 부문 최고령 수상자가 되었습니다.
2009년 81회 남우주연상
2009년 2월 22일, 로스앤젤레스 코닥 시어터에서 열린 81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가장 흥미를 끌었던 대결은 10개 부문에 노미네이트 된 대니 보일 Danny Boyle의 <슬럼독 밀리어네어 Slumdog Millionaire(2008)>와 그해 최다 부문 후보작으로 13개 부문 후보에 노미네이트 된 데이비드 핀처 David Fincher의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 The Curious Case of Benjamin Button(2008)> 가운데, 어느 작품이 작품상과 감독상을 비롯한 주요 부문 수상과 함께 최다 부문 수상작이 될 것인가였는데요. 결과는 8개 부문을 휩쓴 <슬럼독 밀리어네어(2008)>의 압승.
하지만 두 걸출한 작품의 대결 못지않게 그해 유독 주목을 끌었던 부문은 바로 남우주연상 부문이었습니다.
이미 <미스틱 리버 Mystic River(2003)>로 76회 남우주연상을 받은 숀 펜 Sean Penn이 <밀크 Milk(2008)>로 5년 만에 두 번째 오스카를 노리고 있었는데요. SAG와 크리틱스 초이스를 비롯, 뉴욕, 로스앤젤레스, 전미 평론가협회상 등을 받아 수상권에 가까이 다가선 프런트러너였습니다.
숀 펜이 <밀크(2008)>에서 보여준 연기력은 이견의 여지없이, 오스카를 수십 개를 갖다 바쳐도 모자람이 없을 정도로 훌륭했지만, 숀 펜이 놓친 BAFTA와 골든 글로브 드라마 부문에서 수상한 미키 루크 Mickey Rourke가 <더 레슬러 The Wrestler(2008)>에서 가감 없이 보인 처절한 연기는 왕년의 미남스타에서 망가진 얼굴을 한 퇴물 배우로 쇠락해 가던 그가 화려하게 재기에 성공했다는 신호탄이었습니다.
어쩌면, 이미 오스카를 손에 들고 포토콜을 가졌던 숀 펜이 두 번째 오스카를 수상하는 것보다, 아카데미상과는 평생 인연이 없을 것만 같았던 미키 루크의 이름이 불려지고 그의 품에 오스카가 안겨 있는 모습이 훨씬 더 감동적이고 영화 같은 순간이 될 수도 있겠다는 기대감이 컸을 수도 있습니다.
그해 연기상 부문 시상은 전년도 수상자를 포함해 이전 수상자들 4명이 함께 무대에 올라, 후보 한 명씩 소개하는 방식이었는데요. 다만 남우주연상 부문은 전년도인 80회 시상식에서 <데어 윌 비 블러드 There Will Be Blood(2007)>로 두 번째 남우주연상을 수상한 다니엘 데이 루이스 Daniel Day-Lewis가 참석하지 않았고, 대신 75회 수상자 에이드리언 브로디 Adrien Brody - <피아니스트 The Pianist(2002)>, 60회 수상자 마이클 더글러스 Michael Douglas - <월 스트리트 Wall Street(1987)>, 53회 수상자 로버트 드 니로 Robert De Niro - <성난 황소 Raging Bull(1980)>, 64회 수상자 앤소니 홉킨스 Anthony Hopkins - <양들의 침묵 The Silence of the Lambs(1991)>, 55회 수상자 벤 킹슬리 Ben Kingsley - <간디 Gandhi(1982)>가 등장했습니다.
더글러스는 <월 스트리트: 머니 네버 슬립스 Wall Street: Money Never Sleeps(2010)>에 함께 출연한 프랭크 란젤라 Frank Langella - <프로스트 VS 닉슨 Frost/Nixon(2008)>, 드 니로는 <천사탈주 We're No Angels(1989)><할리우드 폭로전 What Just Happend(2008)>에 함께 출연한 숀 펜, 브로디는 <비지터 The Visitor(2008)>의 리처드 젠킨스 Richard Jenkins, 홉킨스 Hopkins는 <가을의 전설 Legends of the Fall(1994)><조 블랙의 사랑 Meet Joe Black(1998)>에 함께 출연한 브래드 피트, 킹슬리는 미키 루크를 소개했습니다.
그리고 드디어 마이클 더글러스가 봉투를 여는 순간, 호명된 이름은 숀 펜이었습니다.
2004년 76회 남우주연상
<밀크(2008)>로 두 번째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수상한 숀 펜이 생애 첫 아카데미를 수상했던 2004년 2월 29일, 장소는 역시 코닥 시어터.
피터 잭슨 Peter Jackson의 역작 <반지의 제왕: 왕의 귀환 The Lord of the Rings: The Return of the King(2003)>이 11개 부문 후보에 올라 11개 부문 모두를 수상하는 엄청난 기록을 세운 그해 시상식에서, 그에 못지않게 수상 결과가 궁금했던 부문이 바로 남우주연상이었습니다.
<고스트버스터즈 Ghostbusters> 시리즈(1984~1989), <사랑의 블랙홀 Groundhog Day(1993)> 등을 통해 코미디 연기의 대가로 이미 위상이 높았지만, 아카데미 후보에는 한 번도 오르지 못했던 빌 머레이 Bill Murray가 소피아 코폴라 Sofia Coppola의 <사랑도 통역이 되나요? Lost in Traslation(2003)>으로 생애 첫 오스카 노미네이션의 기쁨을 얻었을 뿐 아니라, 골든 글로브 뮤지컬 코미디 부문, BAFTA 그리고 뉴욕, 로스앤젤레스, 전미 평론가협회상 등을 수상하며, 어쩌면 생애 첫 후보 지명에 이어 생애 첫 오스카 수상까지 이어질지도 모른다는 기대감이 한껏 높아졌습니다.
빌 머레이의 오스카 수상 가능성에 가장 큰 적수는 숀 펜이었습니다. 클린트 이스트우드 Clint Eastwood의 <미스틱 리버(2003)>로 골든 글로브 드라마 부문과 크리틱스 초이스 어워즈를 수상하며, 역시 프런트러너로 머레이와 경합을 벌이고 있었습니다.
두 배우의 2파전 양상에 변수가 있다면, <캐리비안의 해적: 블랙 펄의 저주 Pirates of the Caribbean: The Curse of the Black Pearl(2003)>로 SAG를 수상한 조니 뎁 Johnny Depp이 수상할지도 모를 일이었습니다. 어차피 봉투가 열리기 전까지는 100% 확실한 결과를 아무도 알 수 없으니까요.
<디 아워스 The Hours(2002)>로 75회 여우주연상을 수상한 니콜 키드먼 Nicole Kidman이 시상자로 무대에 등장했고,
머레이냐 펜이냐, 아니면 뎁이냐, 아니면 <모래와 안개의 집 House of Sand and Fog(2003)>의 벤 킹슬리냐, 아니면 <콜드 마운틴 Cold Mountain(2003)>의 주드 로 Jude Law냐, 키드먼의 손에 있던 봉투가 열리던 순간 온 세상이 멈춘 듯했습니다.
그리고 키드먼이 부른 이름은 숀 펜이었고, 순간 빌 머레이의 굳어진 표정이 스치면서 얼마나 그가 수상을 기대했는지 짐작하니 왜인지 안타까운 마음마저 들었습니다. 심지어 남우주연상 시상 직후 작품상 발표와 시상만을 남겨두고, 하필 빌 머레이가 자리를 떠난 상황이 포착되었는지, 진행자였던 빌리 크리스털 Billy Crystal이 짓궂은 농담을 던지면서 그 안타까움은 더욱 커졌습니다.
2016년 88회 남우조연상
2016년 2월 28일 로스앤젤레스 돌비 시어터에서 열린 88회 아카데미 시상식은 12개 부문 후보에 오른 <레버넌트: 죽음에서 돌아온 자 The Revenant(2015)>와 10개 부문 후보에 오른 <매드 맥스: 분노의 도로 Mad Max: Fury Road(2015)>의 대결구도가 크게 주목받았는데요.
1년 전, 2015년 87회 아카데미 작품상, 감독상 등을 수상한 알레한드로 G. 이냐리투 Alejandro G. Iñárritu가 2년 연속 아카데미 감독상을 수상했고, 이냐리투와 연이어 작업한 엠마누엘 루베즈키 Emmanuel Lubezki가 <그래비티(2013)><버드맨(2014)><레버넌트(2015)>로 3년 연속 아카데미 촬영상을 수상했고, 이미 여러 번 오스카를 수상했었다고 해도 놀랍지 않았을, 엔니오 모리꼬네 Ennio Morricone(1928~2020)가 <헤이트풀 8 The Hateful Eight(2015)>로 첫 아카데미 오리지널 스코어상을 수상한 해이기도 합니다.
한국 배우로서는 최초로 이병헌 배우가 외국어 영화상 시상자로 등장하기도 한 88회 시상식에서, 인터넷 밈으로까지 떠돌았던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Leonardo DiCaprio의 수상 여부와 함께 연기상 부문에서 뜨거웠던 관심은 남우조연상 부문으로 쏠렸습니다.
과연 49회 아카데미 작품상 수상작인 <록키 Rocky(1976)>의 스타 실베스터 스탤론 Sylvester Stallone이 '록키' 시리즈의 스핀 오프 속편 <크리드 Creed(2015)>에서 록키 발보아를 다시 연기해 <록키(1976)>로 남우주연상에 오른 후 39년 만에 같은 캐릭터를 연기해 남우조연상에 도전했기 때문입니다.
록키 발보아의 컴백을 한껏 환영하는 듯, 이미 골든 글로브와 크리틱스 초이스는 스탤론에게 트로피를 선사했지만, 스탤론이 압도적인 프런트러너는 아니었습니다. <스파이 브릿지 Bridge of Spies(2015)>의 마크 라일런스 Mark Rylance가 BAFTA와 뉴욕, 전미 평론가협회상을 받으며 스탤론을 바짝 위협하고 있었거든요. SAG를 수상한 이드리스 엘바 Idris Elba는 오스카 후보에 오르지 못해 그해 커다란 이변으로 이미 한바탕 시끌벅쩍했던 터라, 두 배우를 중심으로 한 2파전 양상이 더욱 짙었습니다.
전년도 <보이후드 Boyhood(2014)>로 87회 여우조연상을 받은 패트리샤 아퀘트 Patricia Arquette가 시상자로 등장했고, 과연 스탤론의 '록키' 신화가 39년 만에 다시 감동의 드라마를 쓰게 될지 모두가 주목했습니다. 결국 봉투 안에 새겨진 이름은 스탤론이 아닌 라일런스였고, 오랜만에 시상식장을 찾은 스탤론은 아쉽지만 축하의 박수를 보내야만 했습니다.
2007년 79회 남우조연상
2007년 2월 25일 코닥 시어터에서 열린 79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그해 최다 부문 후보작이었던 <드림걸즈 Dreamgirls(2006)>로 생애 첫 오스카 후보에 오른 에디 머피 Eddie Murphy는 오스카 레이스에서 골든 글로브, BAFTA, 크리틱스 초이스에서 수상하며 남우조연상 수상이 가장 유력해 보였습니다.
함께 후보에 올랐던 <미스 리틀 선샤인 Little Miss Sunshine(2006)>의 앨런 아킨 Alan Arkin이 BAFTA를 수상했으나 크게 위협적이지 않아 보였고, 뉴욕 평론가협회가 선택한 <리틀 칠드런 Little Children(2006)>의 재키 얼 헤일리 Jackie Earle Haley, NBR이 선택한 <블러드 다이아몬드 Blood Diamond(2006)>의 디몬 하운수 Djimon Hounsou, 전미 평론가협회가 선택한 <디파티드 The Departed(2006)>의 마크 월버그 Mark Wahlberg 등, 그해 남우조연상 후보의 양상은 에디 머피를 제외하면 누구 하나 크게 두각을 나타내는 듯 보이지 않았기 때문에, 더더욱 에디 머피의 수상 소감을 들을 수 있겠다는 기대가 커졌죠.
게다가 <드림걸즈(2006)>는 작품상, 감독상 후보에서는 제외되었지만 그해 최다 부문 후보작이었고, 에디 머피와 함께 출연한 제니퍼 허드슨 Jennifer Hudson은 여우조연상 부문에서 거의 수상이 확실시되는 강력한 후보였기에, 어쩌면 같은 작품에 출연한 두 배우가 나란히 남녀조연상을 수상하는 그림이 나올 수도 있겠다는 예측이 강했습니다.
<콘스탄트 가드너 The Constant Gardener(2005)>로 78회 여우조연상을 수상한 레이첼 바이즈 Rachel Weisz가 시상자로 등장했고, 많은 사람들의 예상을 뒤엎고 79회 아카데미 남우조연상은 앨런 아킨에게 돌아갔습니다.
2011년 83회 감독상
2011년 2월 27일 코닥 시어터. 82번째 시상식을 개최하게 된 아카데미가 선택한 82번째 작품상 후보 가운데, 12개 부문에 노미네이트 되어 그해 최다 부문 후보작이었던 <킹스 스피치 The King's Speech(2010)>가 단연 앞서 나가고 있었습니다. 그 뒤를 이어 코엔 형제의 <더 브레이브 True Grit(2010)>가 10개 부문에 올랐고, 크리스토퍼 놀란 Christopher Nolan의 <인셉션 Inception(2010)>과 데이비드 핀처의 <소셜 네트워크 The Social Network(2010)>가 각각 8개 부문에 노미네이트 되었는데요.
그런 가운데 작품상의 향방만큼이나 크게 관심이 갔던 부문은 바로 감독상. 특히 이전의 걸작들이 모두 외면당하다가,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2008)>로 첫 아카데미 노미네이션 되었던 핀처가 대니 보일과의 대결에서 밀린 후, 두 번째 도전이 된 가운데, 오스카 레이스에서 BAFTA, 골든 글로브, 크리틱스 초이스 어워즈를 비롯해, 뉴욕, 로스앤젤레스, NBR, 전미 평론가협회상을 모두 수상하며, 이번에는 핀처의 아카데미 감독상 수상이 유력하겠다 싶었습니다.
다만, 최다 부문 후보작이었던 <킹스 스피치(2010)>의 톰 후퍼 Tom Hooper가 하필 미국 감독조합 DGA를 받으며 단독질주 중이던 핀처의 덜미를 잡았던 거죠.
드디어 다가온 운명의 시간, <허트 로커 The Hurt Locker(2008)>로 82회 감독상을 수상하여, 여성 감독 최초 수상자로 기록된 캐스린 비글로 Kathryn Bigelow와 <소년은 울지 않는다 Boys Don't Cry(1999)><밀리언 달러 베이비 Million Dollar Baby(2004)>로 72회와 77회, 여우주연상 2회 수상자인 힐러리 스왱크 Hilary Swank가 시상자로 등장했고, 82번째 아카데미 감독상 수상자로 톰 후퍼의 이름을 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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