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크리트 유토피아(2023) - 지상낙원 황궁 아파트에서 펼쳐지는 아비규환(阿鼻叫喚)
※ 글 내용 중에 영화 <콘크리트 유토피아(2023)>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김숭늉 작가의 웹툰 『유쾌한 왕따』 중 2부 "유쾌한 이웃"을 원작으로 한 재난 드라마 <콘크리트 유토피아 Concrete Utopia(2023)>는 <잉투기 INGtoogi: The Battle of Internet Trolls(2013)><가려진 시간 Vanishing Time: A Boy Who Returned(2016)>등을 연출한 엄태화 감독의 세 번째 장편 연출작입니다.
이병헌, 박서준, 박보영, 김선영, 박지후, 김도윤, 권은성, 나철(1986~2023), 이효제 배우 등이 출연했고, 엄태화 감독의 동생인 엄태구 배우가 특별출연했습니다.
제작비 223억 원이 투입되어 지난 2021년 4월부터 8월까지 촬영했고, 2023년 8월 9일 개봉했습니다. 손익분기점은 전국 관객수 410만 명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어떤 내용이길래
원인 모를 대지진이 일어나 온 세상이 폐허가 되어버리지만, 황궁 아파트 103동 건물만큼은 무너지지 않고 우뚝 솟아있습니다. 602호에 사는 부부인 평범한 공무원 민성(박서준)과 간호사 출신 명화(박보영)는 전기도 수도도 모두 끊어진 가운데 남은 음식과 물로 근근이 하루하루 버티고 있습니다.
민성과 명화 부부 외에 살아남은 황궁 아파트 103동 주민들은 인근에 있었던 드림팰리스 주민들을 포함해, 103동으로 몰려드는 외부인들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골치를 썩고 있던 중, 1층에서 일어난 화재를 온몸을 던져 막아낸 902호 아들 영탁(이병헌)을 임시 주민 대표로 선출하며 좀 더 확실하고 체계적인 대응방안을 세우기 시작합니다.
아파트 곳곳에 숨어 지내던 외부인들을 모조리 쫓아낸 후, 영탁과 부녀회장 금애(김선영)가 주도하여 생존 주민들에게 역할을 부여하고, 외부와 철저히 격리하며 황궁 아파트 103동 주민들 사이에서 새로운 시스템이 갖춰집니다. 그러던 어느 날, 영탁의 옆집인 903호에 살았던 혜원(박지후)이 외부에서 나타나면서, 새로운 긴장감이 주민들 사이에 피어납니다.
'왜?'는 건너뛰고 '어떻게'에 집중한 서사
영화 <콘크리트 유토피아(2023)>는 제목에 쓰인 '유토피아', 즉 이상적 미래와는 정반대의 재난 시국에 처한 인간 군상들이 본능적으로 생존하기 위해 애쓰는 고군분투를 그렸는데요. 대지진이 일어난 범위가 서울에 국한된 것인지, 전국적인 현상인지, 아니면 전 세계적으로 벌어진 것인지, 지진의 원인은 무엇이며 그 이후 벌어진 국가적, 사회적 대응은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되지 않습니다.
영화는 오직, 어떤 이유에서인지는 모르지만, 대지진 속에서 무너지지 않은 단 한 장소, 황궁 아파트 103동이라는 장소 배경과 그 안에서 살아남은 인간들의 모습에 집중합니다. 어쩌면 지진의 원인과 대응이 추가됐다면 어쩔 수 없이 구구절절 곁가지 설명이 난무했을 텐데, 그런 점에서는 오히려 선택과 집중이 효과적이었습니다.
따로 챕터가 나뉘진 않지만, 극 전개 상 중요한 순간 몇 군데를 중심으로 나눠본다면, 박지후 배우가 연기한 903호 혜원이 나타나기 전과 후의 분위기는 사뭇 달라지는데요. 혜원이 등장하기 전까지는 주로 103동 주민들을 대표하는 영탁을 중심으로 한 주민 생존기를 그립니다. 마치 윌리엄 골딩 William Golding(1911~1993)의 소설 『파리대왕 Lord of the Flies(1954)』이나 봉준호 감독의 <설국열차(雪國列車) Snowpiercer(2013)>를 연상시키는 전개가 익숙하기는 하지만, 거기에 한국 사회에 만연한 기이한 아파트 문화를 둘러싼 이상한 편 가르기가 가미되어 나름 사회비판적 시각을 견지합니다.
혜원이 등장한 이후에는 영탁의 비밀이 밝혀지면서, 영화의 분위기는 사뭇 서스펜스 스릴러의 분위기로 전환되는데요. 이미 초반부에서 영탁이 화재를 진화한 후 주민들이 모여있을 때, 부녀회장을 비롯한 주민들과 영탁의 첫 대면에서부터 뭔가 대답을 머뭇거리는 영탁의 모습에서 짐작가능한 부분이었지만, 이 또한 매우 촘촘하지는 않더라도 흥미로운 빌드업의 한 부분이었습니다.
후반부에서 명화가 영탁의 비밀을 밝혀내고 폭로하는 과정에서 명화 캐릭터가 급격히 급발진을 해버리면서, 다소 의아한 결말로 이어졌는데요. 결국 명화가 영탁의 정체와 비밀 - 원래 903호에 살던 김영탁이 아니라, 김영탁에게 아파트 사기를 당한 모세범이었고, 모세범이 원래 김영탁을 살해하고 김치냉장고에 시신을 유기한 채 김영탁 행세를 했다는 등 -을 폭로하기 위해 일부 주민들과 결탁한 과정은 생략되더라도, 명화가 이를 밝혀 무엇을 얻으려 한 것인지에 대해 납득하기가 조금 어려웠습니다.
결과적으로 아파트 외부 편의점 사장을 죽이면서 그로부터 갈취한 총까지 손에 쥐고, 권력의 핵이 된 영탁이 마침 그 총을 손에 쥐고 있던 그 순간, 주민들의 공분을 일으켜 영탁을 처단하고 새로운 질서를 만들려 한 것인지, 주민들 사이에 소요를 일으켜 명화가 어떤 것을 성취하려 한 것인지가 다소 모호했던 점이 아쉽다면 아쉬운 지점이었습니다. 남편인 민성이 영탁의 체제 아래에서 예전과 다른 모습, 혹은 명화가 알고 있던 민성의 모습과 다르게 변해가는 것이 안타까워 이를 바로잡고 싶었다면, 명화의 바람은 결국 실패로 돌아갔죠. 주민들과 영탁 사이에 벌어진 소요 속에서 민성이 크게 부상을 당해, 황궁 아파트 103동 밖으로 둘이 손잡고 탈출하지만, 결국 민성은 사망해 버리니까요.
그런 의미에서, 또 다른 생존자들을 만나 옆으로 누워버린 주상복합 아파트 어느 방에서 새로운 인생을 살게 된 명화의 입장에서 본다면, 목숨은 부지했으나 결국 남편을 잃었으니 비극적인 결말이 되는 셈일 수도 있고, 아니면 그때부터 새로운 삶을 시작해 앞으로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르니 열린 결말이라고 볼 수도 있겠죠.
영화 <콘크리트 유토피아(2023)>는 러닝타임 거의 대부분이 황궁 아파트 103동을 중심으로 펼쳐지기 때문에, 장소 이동은 그렇게 넓게 이뤄지지 않습니다. 하지만 폐허가 되어버린 103동 주변을 탐색하는 등의 활동이 이어지므로, 세상이 망해버린 디스토피아의 분위기는 VFX로 충분히 구현되었으나, 대지진 장면에서의 VFX는 조금 아쉬운 편이기는 합니다.
김영탁/모세범을 연기한 이병헌 배우는 앙상블 캐스트 가운데에서도 극을 이끌어가는 중심 캐릭터로서 자신의 이름값을 충분히 해냈을 정도로 안정적인 연기를 보였는데요. 나름의 반전의 키를 가지고 있는 인물인 만큼, 다채로운 캐릭터의 면면이 빛나는 장면들이 많았습니다.
민성을 연기한 박서준 배우도 생존을 위해 애쓰는 생활인으로서의 모습이 새로웠고, <너의 결혼식 On Your Wedding Day(2018)> 이후 5년 만에 주연 영화를 개봉시킨 박보영 배우도 후반부 명화 캐릭터의 행동의 모호함을 제외한다면, 극을 이끄는 캐릭터로서 존재감이 상당했습니다.
[영화 정보]
제목: 콘크리트 유토피아(2023)
영제: Concrete Utopia
제작국가: 한국
감독: 엄태화
캐스트: 이병헌, 박서준, 박보영, 김선영, 박지후, 김도윤, 권은성, 나철, 이효제, 엄태구 등
장르: 재난/드라마
러닝타임: 130분
관람등급: 15세 관람가
개봉일: 2023년 8월 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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