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제(祝祭)(1996) - 망자(亡者)를 떠나보내는 신성한 의식(儀式)
※ 글 내용 중에 영화 <축제(祝祭)(1996)>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임권택 감독의 95번째 장편 연출작 <축제(祝祭) Festival(1996)>는 <서편제(西便制) Sopyonje(1993)>에 이어 이청준 작가(1939~2008)의 소설을 원작으로, <장미빛 인생 Rosy Life(1994)>의 각본을 써 대종상, 백상예술대상, 청룡영화상을 받은 육상효 작가가 각색을 했습니다.
극 중 상주이자 저명한 작가 준섭을 연기한 안성기 배우는 어린이 시절 출연한 <십자매 선생 The Teacher with Ten Daughters(1964)>를 비롯, <만다라(曼陀羅) Mandara(1981)><안개마을 Village of Haze(1982)><오염된 자식들 Polluted Ones(1982)><태백산맥(太白山脈) The Taebaek Mountains(1994)>에 이어 임권택 감독 연출작에 여섯 번째 출연했고, 이후 <취화선(醉畵仙) Chihwaseon(2002)><화장(化粧/火葬) Revivre(2015)>에도 출연했습니다.
한국영화 최초 서울 관객수 100만 명을 돌파했던 <서편제(1993)>의 송화 역으로 데뷔한 오정해 배우가 <태백산맥(1994)>에 이어 준섭의 조카 용순 역으로 출연했고, 한은진(1918~2003), 정경순, 박승태, 이금주, 안병경, 김경애, 남정희, 이해룡, 이예민, 이얼(1964~2022), 배태일, 임진택, 홍원선, 방은미, 신성일, 박용진, 최동준, 김종구, 김기천 배우 등이 출연했습니다.
<축제(1996)>는 1996년 6월 6일, 태흥영화 배급으로 종로 3가에 있었던 단성사와 강남역에 있었던 씨티극장에서 개봉했으나, 서울 관객수 50,561명에 그치며 흥행에 성공하지는 못했지만, 1996년 17회 청룡영화상 작품상과 감독상, 1997년 33회 백상 예술대상 영화부문 감독상을 수상했습니다.
어떤 내용이길래
문학계에서 꽤 이름을 알린 작가 이준섭(안성기)에게는 5년 넘게 치매를 앓고 계신 노모(한은진)가 계십니다. 그러던 어느 날, 노모께서 돌아가셨다는 연락을 받은 준섭은 아내 최지현(이금주)과 딸 은지를 데리고 고향으로 내려갈 준비를 하던 중, 돌아가신 줄 알았던 노모가 다시 깨어나셨다는 이야기를 듣지만, 그대로 고향을 향해 출발합니다.
다시 소생하신 줄 알았던 노모가 87세를 일기로 결국 세상을 떠나자, 집안사람들은 물론 동네 사람들이 한데 모여 분주하게 장례 준비를 시작합니다. 시어머니 병시중을 도맡아 온 준섭의 형수 외동댁(박승태)의 마음속에는 알듯 모를듯한 설움이 복받치고, 시끌벅적한 조문객들은 저마다의 고인을 추모합니다.
준섭의 모친상을 통해 준섭의 문학세계를 재조명하는 기획 기사를 쓰려는 기자 장혜림(정경순)이 장례식의 다양한 면면을 매서운 눈으로 관찰하며 취재에 열을 올리고 있던 중, 불청객처럼 나타난 준섭의 이복조카 이용순(오정해)의 등장으로 준섭을 비롯한 가족들의 불편한 심기가 드러나고 이를 지켜본 혜림은 이용순과 준섭의 가족 사이에 어떤 비밀이 숨겨져 있는지 관심을 가지게 됩니다.
13년 전 돈을 훔쳐 가출한 용순은 화려한 차림과 화장을 하고 나타나 이복언니 형자(홍원선)와 크게 말다툼을 벌이고는 상가를 나서고, 마침 이를 지켜본 혜림이 용순에게 접근해 이것저것 물어보며 자신의 관심을 드러냅니다. 술을 한두 잔 마시며 혜림과 이야기를 나누던 용순은 어린 시절 계모와 이복형제들에게 구박받던 자신을 감싸주던 할머니에 대한 애정과 함께 사회적으로 명망 있는 작가가 되었지만 자신의 어머니를 모시지 않은 삼촌 준섭에 대한 원망도 있음을 은근슬쩍 표현합니다.
전통적 장례 절차와 동화(童話), 두 개의 서사를 통해 살펴보는 인간의 삶과 죽음
영화 <축제(1996)>는 장례식이라는 절차를 통해 한 인간의 죽음을 추모하는, 남은 자들이 행하는 성스러운 의식을 보여주며, 한국의 전통적인 장례 절차를 찬찬히 되짚어보는 일종의 사료(史料)와도 같은 기록영상의 역할도 하는데요. 용순이라는 다소 이질적인 캐릭터가 불쑥 나타나면서, 다소 단조로운 드라마에 가까운 서사에 갈등을 일으키면서 얕지만 미스터리의 요소를 가미합니다.
거기에 준섭이 딸 은지에게 할머니가 돌아가시기까지 손녀에게 키와 나이를 조금씩 나눠주신다는 내용을 담은 영화 속 동화 《할미꽃은 봄을 세는 술래란다》의 전개가 장례식과 교차로 진행되면서, 더욱 풍성한 서사로 한 인간의 삶과 죽음에 대해 생각할 수 있는 틈을 열어둡니다. 이러한 이중 서사 전개는 영화 <축제(1996)>만의 고유성을 부과하여, 특히 1990년대 이후 임권택 감독 연출작들에게서 감지되는 장인(匠人)의 고집을 제대로 느끼게 합니다.
일반적으로 한 사람의 죽음을 대하는 남은 자들이 느끼는 가장 큰 감정은 슬픔일 텐데요. 망자를 떠나보내며 슬픔에 함몰되지 않고, 남은 자들의 갈등도 해소하고, 할머니의 죽음을 제대로 감지하지 못하는 어린 손녀에게는 동화를 통해 그 의미를 전달하는 친절한 서사가 또한 영화 <축제(1996)>의 미덕입니다. 그래서인지, 마지막 장면에서 남은 자들이 한데 모여 사진 촬영을 할 때 사진사가 잔뜩 정색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던지는 마지막 대사가 인상적입니다. 다들 웃으라고, 무슨 초상났냐고.
[영화 정보]
제목: 축제(祝祭)(1996)
영제: Festival
제작국가: 한국
감독: 임권택
캐스트: 안성기, 오정해, 한은진, 정경순, 박승태, 이금주, 홍원선, 안병경, 김경애, 남정희, 이해룡, 이예민, 이얼 등
장르: 드라마
러닝타임: 107분
관람등급: 12세 관람가
개봉일: 1996년 6월 6일
주요 수상내역:
1997년 33회 백상 예술대상 영화부문 감독상 수상
1996년 17회 청룡영화상 2개 부문 수상 - 작품상, 감독상
1996년 16회 한국 영화평론가협회상 2개 부문 수상 - 작품상, 남자연기상(안성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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