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너미 앳 더 게이트(2001) - 절체절명(絕體絕命)
※ 글 내용 중에 영화 <에너미 앳 더 게이트(2001)>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중세 미스터리 <장미의 이름 The Name of the Rose(1986)>, 어드벤처 가족 영화 <베어 The Bear(1988)>, 로맨틱 드라마 <연인(L'Amant) The Lover(1992)>, 전기 영화 <티벳에서의 7년 Seven Years in Tibet(1997)> 등 다양한 장르를 넘나드는 고유한 필모그래피를 가진 프랑스 감독이자 각본가, 제작자인 장 자크 아노 Jean-Jacques Annaud의 아홉 번째 장편 연출작 <에너미 앳 더 게이트 Enemy at the Gates(2001)>.
미국 작가 윌리엄 크레이그 William Craig(1929~1997)가 1973년 발표한 논픽션 《Enemy at the Gates: The Battle for Stalingrad》를 원작으로 장 자크 아노와 프랑스 각본가 알랭 고다르 Alain Godard(1944~2012)가 공동 각색을 맡았고, 제2차 세계대전 중 스탈린그라드에서 소련군과 나치 독일을 중심으로 한 추축군 사이에 벌어진 '스탈린그라드 전투 Battle of Stalingrad(1942. 8~1943. 2)'를 배경으로 한 전쟁 드라마입니다.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소련의 저격수이자 전쟁 영웅이었던 실존 인물 바실리 자이체프 Vasily Zaitsev(1915~1991)를 모티브로 한 메인 캐릭터 자이체프는 주드 로 Jude Law가 연기했고, <셰익스피어 인 러브 Shakespeare in Love(1997)>로 스타덤에 오른 조셉 파인즈 Joseph Fiennes, <미이라 The Mummy> 시리즈(1999~2001)로 할리우드에서 명성을 얻기 시작한 레이첼 바이즈 Rachel Weisz, <모나 리자 Mona Lisa(1986)><누가 로저 래빗을 모함했나 Who Framed Roger Rabbit(1988)> 등의 작품으로 유명한 밥 호스킨스 Bob Hoskins(1942~2014), <아폴로 13 Apollo 13(1995)><트루먼 쇼 The Truman Show(1998)><폴락 Pollock(2000)> 등으로 아카데미 후보에 오른 에드 해리스 Ed Harris 등이 출연했습니다.
제작비 6,800만 달러(약 899억 원)가 투입된 <에너미 앳 더 게이트(2001)>는 2001년 3월 16일, 파라마운트 픽쳐스 배급으로 북미 1,509개 극장에서 개봉, 첫 주말 수익 1,381만 달러(약 182억 원)로 같은 주 개봉한 스티븐 시걸 Steven Seagal 주연작 <엑시트 운즈 Exit Wounds(2001)>에 이어 박스오피스 2위로 데뷔했습니다.
이후 북미 최대 1,724개 극장으로 확대되어, 전체 상영기간 41주간 모은 북미 최종 누적 수익은 5,140만 달러(약 679억 원)였고, 전 세계 최종 누적 수익은 9,697만 달러(약 1,281억 원)를 기록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북미 개봉 후 약 두 달이 지난 2001년 5월 19일 개봉, 서울 최종 관객수 81,986명이었습니다.
영화의 제목이자 원작 저서의 제목인 '에너미 앳 더 게이트 Enemy at the Gates'는 문 앞에 적이 다가왔을 정도로 매우 다급하고 긴박한 상황을 비유하는 표현입니다.
어떤 내용이길래
눈으로 뒤덮인 숲. 늑대 한 마디가 서성이고 어린 바실리(알렉산더 쉬완)가 늑대를 향해 소총을 겨냥하고 숨죽인 채 노려보고 있습니다. 묶여 있는 말을 미끼 삼아 늑대를 유인하던 중, 드디어 말을 향해 늑대가 달려들고 바실리는 방아쇠를 당깁니다.
제2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1942년 9월 20일, 소련 육군 소속 이병 바실리 자이체프(주드 로)는 또래의 다른 청년들과 기차 화물칸에 짐짝처럼 실린 채 목적지가 어디인지도 모른 채로 달려가고 있습니다. 알고 보니 열차는 독일군의 표적이 되어 쑥대밭이 되어버린 스탈린그라드로 향하고 있었고, 기차에서 끌려 내려진 바실리는 신병수송선에 탑승합니다. 그때 독일군 전투기에서 사정없이 쏟아지는 폭탄세례로 수송선은 난리가 나고 수많은 인명이 희생당합니다. 겁에 질린 병사들이 수송선 밖 바다로 몸을 던질라치면 소련군 장교들이 병사들을 향해 총부리를 겨누니 오도 가도 못하는 신세.
수송선의 아비규환을 견뎌낸 바실리는 곧 모신나강 소총을 받아 들고 자살특공대 격인 우라 돌격의 소용돌이로 등 떠밀리고, 독일군의 총탄 공격 속에서 희생당한 시체더미 사이에 숨어 목숨을 건집니다. 그리고 탈출에 성공한 정치장교 다닐로프 대위(조셉 파인즈)와 조우한 바실리는 다닐로프가 확보한 모신나강 소총에 자신이 가지고 있던 탄 클립을 장착, 샤워 중이던 나치군 장교를 처단하는 맹활약을 펼칩니다.
바실리의 비범한 사격 실력에 감탄한 다닐로프는 스탈린그라드에 새로 부임한 책임자 니키타 흐루쇼프(밥 호스킨스)에게 바실리의 공적을 한껏 부각해 전쟁 영웅으로 추대해, 기세가 바닥 아래로 떨어진 소련군에게 새로운 희망의 빛을 주자는 제안을 합니다. 이후 바실리는 소련군 일등 저격수로 승승장구하며 소련군을 넘어 소련인들에게 최고의 영웅으로 급부상하고, 이를 통해 바실리와 다닐로프는 전쟁통에 새로운 우정을 쌓는 관계로 발전합니다.
한편, 바실리가 잠복 중에 알게 된 소년 사샤(가브리엘 마샬 톰슨)의 집에 초대를 받고, 마침 다닐로프도 나타나 소련 곳곳에서 도착한 편지를 바실리에게 보여줍니다. 바실리는 글을 읽고 쓸 줄 몰랐지만 다닐로프가 흔쾌히 도와, 답장을 작성하던 중, 스탈린그라드로 오던 기차 안에서 본 적 있는 타냐(레이첼 바이즈)와 재회합니다. 모스크바 대학에서 독일문학을 전공했던 타냐는 자진 입대해 참전했고, 타냐를 처음 본 다닐로프 또한 바실리 못지않게 타냐에게 마음을 빼앗겨버립니다.
전쟁의 포화 속에서 솟아난 감정에 관한 드라마
<에너미 앳 더 게이트(2001)>는 2001년 개봉 당시 흥행에 크게 성공하지도 못했고, 평단으로부터도 높이 평가받지 못해 묻혀버린 전쟁 드라마이기는 하지만, 전반부와 후반부의 전투 시퀀스의 유려한 스펙터클과 주드 로, 조셉 파인즈, 레이첼 바이즈, 밥 호스킨스, 에드 해리스 등 주요 캐스트의 묵직한 연기가 상당히 인상적입니다.
그리고 불의의 사고로 너무 일찍, 그리고 갑자기 세상을 떠난 명작곡가 제임스 호너 James Horner(1953~2015)의 오리지널 스코어와 장 자크 아노의 전작 <연인(1992)><티벳에서의 7년(1997)>에서 호흡을 맞춘 프랑스 촬영감독 로베르 프레스 Robert Fraisse가 구사한 영상미도 돋보입니다.
물론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소련군이었던 바실리 자이체프를 주인공으로 한 논픽션 저서를 원작으로 했기 때문에, 실제 벌어졌던 역사적 사건을 배경으로 했음에도 익히 알려진 사실과 다른 묘사가 다소 논란을 일으키기도 했는데요. 더군다나 프랑스 감독이 연출을 맡았고, 미국을 비롯 영국, 프랑스, 독일, 아일랜드 합작 영화이기는 하지만 <에너미 앳 더 게이트(2001)>는 미국 자본이 주로 투입되어 영어권 배우들을 캐스팅한 미국 영화이기 때문에, 좀 더 상세한 역사 묘사에 대한 결핍은 불가피했을 겁니다. 결국 전쟁의 소용돌이에 휘말린 인간들이 겪게 되는 고통스러운 경험과 포화 속에서도 싹트게 된 인간 본연의 감정과 본능에 대한 탁월한 묘사가 돋보이면서도, 전쟁 영화 자체로 봤을 때 어딘가 약간 아쉬운 구석이 남는 것도 사실입니다.
[영화 정보]
국내 제목: 에너미 앳 더 게이트(2001)
원제: Enemy at the Gates(2001)
제작국가: 미국/영국/프랑스/독일/아일랜드
감독: 장 자크 아노
캐스트: 주드 로, 조셉 파인즈, 레이첼 바이즈, 밥 호스킨스, 에드 해리스, 론 펄먼, 에바 마터스, 가브리엘 마샬 톰슨, 마티아스 하비흐 등
장르: 전쟁/드라마
러닝타임: 130분
관람등급: 15세 관람가
개봉일: 2001년 5월 19일(한국)/2001년 3월 16일(미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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