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편제(西便制)(1993) -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인 것이다"
※ 글 내용 중에 영화 <서편제(西便制)(1993)>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임권택 감독의 93번째 장편 연출작 <서편제(西便制) Seopyonje(1993)>는 고(故) 이청준 작가(1939~2008)의 연작 소설 《남도 사람》(1976~1981) 중 1부 《서편제》와 2부 《소리의 빛》을 원작으로 김명곤 배우가 각색했습니다.
각색을 맡은 김명곤 배우가 주인공 유봉을 연기했고, 국악인이자 배우인 오정해 배우가 송화 역으로 데뷔했습니다. 송화의 남동생 동호를 연기한 김규철 배우는 연극 무대에서 활동하다 <서편제(1993)>를 통해 영화에 첫 출연했습니다. 세 배우와 함께 신새길, 안병경, 최동준, 최종원, 강선숙, 주상호, 이인옥 배우 등이 출연했습니다.
1993년 4월 10일, 종로 3가에 있었던 단성사에서 개봉한 <서편제(1993)>는 6개월 이상 장기상영했고, 서울 누적 관객수 103만 명을 기록하여 1993년 당시 기준으로 서울 관객수 100만 명을 돌파한 최초의 한국 영화이자 한국 영화 역대 흥행 1위 작이 되었습니다.
<서편제(1993)>는 흥행 성공뿐 아니라, 1993년 31회 대종상과 14회 청룡영화상 작품상 등 각각 6개 부문에서 수상했고, 1994년 30회 백상 예술대상 영화부문 작품상, 1993년 1회 상하이 국제영화제 감독상, 여우주연상 등 주요 시상식을 휩쓸었습니다.
영화와 원작 소설의 제목인 '서편제'는 전라남도 광주광역시, 나주시, 보성군 등의 지역에서 불린 판소리 유파를 뜻합니다.
어떤 내용이길래
1960년대 초 전라도 보성 소릿재의 한 주막을 찾은 동호(김규철)는 주막 주인의 판소리를 들으며 잠시 과거를 돌아봅니다.
마을 대갓집에서 열리는 잔치를 돌아다니던 소리꾼 유봉(김명곤)은 어린 아들 동호를 데리고 살던 금산댁(신새길)을 만나 정을 키우다 살림을 합치기로 하고, 자신의 수양딸인 어린 송화(김송)까지 넷은 가족이 됩니다. 서로 낯 모르던 어린 송화와 동호는 금세 친해져 남매로 지내던 중, 금산댁이 출산 중에 저 세상으로 떠나고 금산댁의 복중태아도 세상 빛을 보지 못한 채 제 어미와 함께 사망합니다.
금산댁을 떠나보내고 소리품을 팔며 홀로 근근이 송화와 동호를 돌보던 유봉은 소리에 재능이 없는 동호에게는 북채를 쥐어주고, 송화에게는 호되게 훈련을 시키며 소리꾼으로 키우기 시작합니다. 시간이 흘러 송화(오정해)와 동호(김규철)도 성인이 되었지만, 소리꾼에 대한 세간의 천대는 점점 더 심해졌고 그들의 생활도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습니다.
끝나지 않을 것 같은 궁핍한 생활을 견디지 못한 동호가 집을 뛰쳐나가고, 송화는 그런 동호를 애타게 기다립니다. 그러던 중 유봉은 혹시라도 송화마저 동호의 뒤를 따라 자신을 떠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한약을 먹여 송화의 눈이 멀게 합니다. 그리고 송화의 마음속에 감춰진 '한(恨)'을 끄집어 내 소리의 경지에 닿도록 송화를 더욱 호되게 훈련시킵니다.
5분이 넘는 '진도 아리랑' 롱테이크 명장면
영화 <서편제(1993)>는 소리꾼 유봉이 수양딸 송화의 눈까지 멀게 하면서까지 도달하게 하려던 소리꾼의 경지에 대한 욕심과 야망, 이기심을 받아들이느냐 못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영화 자체에 대한 감흥과 공감 여부가 좌우되는 듯한데요. 우리나라의 고유한 문화유산인 판소리를 하는 소리꾼이 그저 남의 집 잔치나 술자리에서 흥이나 돋우는 정도의 역할로 천대받던 분위기 속에서 유봉의 욕심이 그저 과하기만 하다고 비난하기엔 주저하게 됩니다. 그렇더라도 송화에 대한 행위는 분명 학대일진대, 왠지 <서편제(1993)>에 대해 논할 때 이런 식의 논점을 펴는 것은 온당치 못한 일이 아닌지 자뭇 주저하게도 됩니다.
그도 그럴 것이, 1993년 개봉 당시, 한국 영화 최고 흥행기록을 세우고, 대중문화 분야 가운데 크게 주목받지 못하던 판소리를 그전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인지하고 그 음악을 즐기게 한 공로를 저버릴 수는 없었기 때문이기도 한데요.
4K 디지털 리마스터링된 선명한 화질로 한국영상자료원 유튜브 공식 채널을 통해 아주 오랜만에 다시 <서편제(1993)>를 보면서, 한동안 잊고 있었던 판소리의 깊은 울림은 매력적이었지만, 아직도 유봉의 이기심에 대해서는 동조하기가 어려웠습니다. 물론, 5분 여에 달하는 '진도 아리랑' 롱테이크 명장면은 다시 봐도 역시 감탄을 금치 못했습니다.
[영화 정보]
제목: 서편제(西便制)(1993)
영제: Seopyonje
제작국가: 한국
감독: 임권택
캐스트: 김명곤, 오정해, 김규철, 신새길, 안병경, 최동준, 최종원, 강선숙, 주상호, 이인옥 등
장르: 드라마
러닝타임: 112분
관람등급: 12세 관람가
개봉일: 1993년 4월 10일
주요 수상내역:
1993년 31회 대종상 6개 부문 수상 - 작품상, 감독상, 촬영상, 녹음상, 신인여우상(오정해), 신인남우상(김규철)
1994년 30회 백상 예술대상 영화부문 작품상 수상
1993년 14회 청룡영화상 6개 부문 수상 - 작품상, 남우주연상(김명곤), 남우조연상(안병경), 촬영상, 여자신인상(오정해), 한국영화 최다관객상
1993년 4회 춘사영화제 5개 부문 수상 - 작품상, 감독상, 여우주연상(오정해), 기술상(미술), 새 얼굴 남자연기상
1993년 13회 한국 영화평론가협회상 6개 부문 수상 - 작품상, 감독상, 남우주연상(김명곤), 촬영상, 음악상, 신인상(오정해)
1993년 1회 상하이 국제영화제 2개 부문 수상 - 감독상, 여우주연상(오정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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