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글 내용 중에 영화 <벨파스트(2021)>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벨파스트(2021) - 케네스 브래너의 자전적 이야기가 주는 울림
1989년 <헨리 5세 Henry V>로 첫 연출작을 발표한 이후, 감독과 배우, 각본가로 활발하게 활동해 온 케네스 브래너 Kenneth Branagh의 20번째 연출작 <벨파스트 Belfast>.
북아일랜드의 수도 벨파스트에서 태어난 케네스 브래너 자신의 어린 시절을 바탕으로 시나리오를 집필하여 연출과 제작을 겸한 이 작품으로, 2022년 94회 아카데미 작품상, 감독상 등 7개 부문에 노미네이트 되었고, 오리지널 각본상을 수상하면서 첫 번째 오스카를 받게 되었습니다.
어떤 내용이길래
1969년 8월 15일, 북아일랜드 전역에서 발생한 정치적, 종파적 폭력 분쟁이 주인공 버디(주드 힐)의 눈앞에서 펼쳐집니다. 가톨릭 신자들의 집과 가게를 공격하는 개신교에 충성하는 무리들이 버디가 사는 동네까지 진출한 것입니다. 더 이상의 무력 충돌을 막기 위해 바리케이드를 치는 동네 사람들. 영국에서 일하는 버디의 아버지 '파 Pa'(제이미 도넌)는 가족이 걱정되어 다급히 벨파스트로 돌아옵니다.
한편, 시험 결과에 따라 자리 배치를 하는 버디의 수업시간. 늘 1등을 지키는 캐서린과 친해지고 싶고 나란히 앉고 싶은 버디. 그리고 둘은 결국 친구가 됩니다. 그러는 사이, 자신들과 함께 할 것을 '파'에게 접근하는 빌리 클랜튼(콜린 모건). 하지만 '파'는 빌리의 요구를 거절하는데, 빌리의 적개심은 더 커지고 버디 근처를 계속 맴돕니다.
가계 부채를 갚느라 등골이 빠지는 버디의 가족들. '파'는 버디의 엄마 '마 Ma'에게 좀 더 나은 벌이를 위해 시드니나 밴쿠버로 이민을 가자고 제안하지만, 평생을 보낸 벨파스트를 떠나기 싫은 '마'. 그렇게 버디 부모의 갈등은 점점 깊어지고, '파'가 일하는 영국의 고용주로부터 승진과 거처 제공까지 제안받자, '마'는 벨파스트를 떠나 런던으로 거처를 옮기는 것에 대해 깊은 고민을 합니다. 그리고 두 아들에게 상의하려 하지만, 버디는 벨파스트를 떠나야 한다는 말에 억장이 무너집니다.
할아버지 '팝 Pop', 할머니 '그래니 Granny', 그리고 사촌, 친구들과 9살 인생 동안 평생을 지내온 벨파스트를 떠나야 할지도 모를 버디. 하지만 근심 걱정은 '파'가 데려가 주는 극장에서 영화를 보는 순간 눈 녹듯이 사라져 버립니다. 과연 버디의 9살 인생 최대의 위기는 어떻게 극복될까요?
따뜻한 기운이 감도는 흑백 영상
영화의 시간 배경인 1969년, 9살 된 주인공 버디는 케네스 브래너 감독 자신을 투영한 캐릭터입니다. 실제 1961년 벨파스트 태생인 케니스 브래너가 어렸을 때 겪었던 실제 이야기를 바탕으로 자신이 각본을 집필하였다고 합니다. 이번 영화로 데뷔전을 치른 주드 힐의 연기가 일단 너무 좋습니다. 9살 어린이가 극장 안에서 온통 집중하며 영화를 감상하는 모습이, 장차 감독이자 배우이자 작가가 된 케네스 브래너의 어린 시절의 모습이라 생각하니 귀여우면서 흐뭇한 감흥이 전해졌습니다.
버디의 엄마 '마'역의 케이트리오나 발피는 벨파스트는 아니지만, 역시 아일랜드 더블린 출신의 배우인데, 이전에 <포드 v 페라리 Ford v Ferrari><나우 유 씨 미 Now You See Me> 등에 출연했다는데 당시에는 전혀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벨파스트>에서의 연기는 무척 인상적이었고, 앞으로의 활동도 기대가 됩니다. 할머니 '그래니'역의 주디 덴치는 역시나 이 영화에서도 등장만으로도 존재감이 대단합니다. 특히 마지막 부분에서의 독백은 굉장했습니다. 마침 94회 아카데미 여우조연상 후보 소개 영상으로도 등장한 장면인데요. 돌아보지 말고, 가라는 할머니의 독백, 버디의 귀에 들리진 않았겠지만 가족을 떠나보내는 할머니의 심경은 버디의 마음에 가닿지 않았을까요?
아빠 '파'역의 제이미 도넌도 새로운 발견입니다.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 Fifty Shades of Grey> 시리즈의 크리스천으로 워낙 강하게 각인된 배우라, 버디의 아빠 역을 맡았다는 소식에 과연 뺀질한(?) 크리스천이 벨파스트의 흑백 영상 속에서 아빠 역할을 어떻게 한다는 건가, 염려까지 들 정도였는데 막상 영화를 보고 나니 그게 다 쓸데없는 걱정이었습니다. 만약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를 다시 본다면, 크리스천이 달리 보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까지 들 정도였습니다.
감독 자신을 비롯하여 아빠 역의 제이미 도넌, 할아버지 역의 키아란 하인즈, 그리고 음악을 맡은 밴 모리슨 모두 실제 벨파스트 출신이라고 하니, 영화 <벨파스트>가 품고 있는 진한 북아일랜드 벨파스트의 정서가 더욱 생생하게 그려졌나 봅니다. 특히 밴 모리슨의 음악 중 "Down to Joy"는 94회 아카데미 오리지널 주제가상 후보에 오르기도 했습니다 (마침 밴 모리슨이 음악을 맡았기에, <벨파스트>는 패트릭 도일이 음악에 참여하지 않은 케네스 브래너의 첫 번째 영화가 되었습니다).
극중 버디가 마블 "토르 Thor" 코믹북을 보는 장면이 있는데, 2011년 <토르 Thor>의 연출을 케네스 브래너가 맡았었고, 이는 일종의 귀여운 이스터 에그 같았습니다.
또 하나 인상 깊었던 연출 방식은, 버디와 가족들이 영화와 연극을 보러 갔을 때, 무대와 스크린 장면들을 컬러로 연출한 장면이었는데요. 마침 IMDb 트리비아를 보니, 실제 북아일랜드에서 벌어진 분쟁으로 인해 어릴 적 기억이 짙은 회색빛이었다면, 그 당시 감상했던 영화가 자신에게 얼마나 소중했는지를 강조하기 위한 연출이었다고 합니다 (출처: IMDb 트리비아). 이를 알고 나니, 9살 어린이를 둘러싼 현실이 얼마나 무겁고 심각했는지, 그만큼 케네스 브래너 자신에게 영화란 무척 소중한 탈출구가 되었다는 사실에 기분이 묘해졌습니다.
그와 동시에, 2022년 현재, 역병이 아직도 창궐해있고, 지구 상 어느 곳에서는 말도 안 되는 전쟁이 벌어지고 있는 냉혹한 현실에 문득 가슴이 저려옵니다.
[영화 정보]
국내 제목: 벨파스트
원제: Belfast
제작국가: 영국
감독: 케네스 브래너
캐스트: 케이트리오나 발피, 주디 덴치, 제이미 도넌, 키아란 하인즈, 콜린 모건, 조시 워커, 주드 힐 등
장르: 드라마
러닝타임: 97분
관람등급: 12세 관람가
개봉일: 2022년 3월 23일 (한국)/2022년 1월 21일 (영국)
주요수상내역:
2022년 94회 아카데미 오리지널 각본상 수상
2022년 94회 아카데미 7개 부문 노미네이트 - 작품상, 감독상, 여우조연상(주디 덴치), 남우조연상(키아란 하인즈), 오리지널 각본상, 음향상, 오리지널 주제가상
2022년 27회 크리틱스 초이스 어워즈 3개 부문 수상 - 앙상블 연기상, 젊은 배우 연기상(주드 힐), 오리지널 각본상
2022년 75회 영국 아카데미 BAFTA 영국영화 작품상 수상
2022년 79회 골든글로브 각본상 수상
2021년 46회 토론토국제영화제 관객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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