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娼)(노는 계집 창)(1997) - 희미한 주제 의식이 아른거리는 사회 고발극
※ 글 내용 중에 영화 <창(娼)(노는 계집 창)(1997)>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임권택 감독의 1997년작 <창(娼)(노는 계집 창) Downfall>은 1970년대 말부터 20여 년의 세월 동안 사회의 '필요악'으로 간주되던 매춘 산업이 자행된 사창가를 배경으로 '방울이'라 불린 한 여인의 이야기를 그린 영화입니다.
1990년대 초 'X세대'를 대표하는 아이콘으로 큰 인기를 누리다 음주운전 사고로 인해 이미지에 큰 타격을 받으며 모든 활동을 중단했던 신은경 배우의 연기 복귀작이기도 했는데요. 당시 20대 중반의 젊은 나이로, 기존에 인기를 모았던 보이시한 스타일과 180도 다른 사창가 여인 역을 맡아 당시로서도, 지금 기준으로 봐도 상당히 파격적인 노출까지 감행하며 열연을 펼쳤고, 청룡영화상 여우주연상과 백상 예술대상 인기상을 수상하며 재기에 성공했습니다.
어떤 내용이길래
때는 1970년대 후반, 열일곱 어린 나이에 시골을 떠나 서울로 온 영은(신은경)은 청계천에 있는 공장에 취직하지만, 더 큰돈을 벌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술집으로 이직합니다. 하지만 영은이 찾은 술집은 술만 파는 가게가 아니었고, 이를 알아챈 영은은 곧장 관두려 하지만, 이미 엎어진 물. 영은을 데려오느라 소개비가 들었으니, 그 돈을 갚을 동안은 절대 발 뺄 수 없다는 포주의 으름장에 이어, 포주 떨거지들이 나서 영은을 폭행하고, 영은의 몸을 더럽힙니다. 자포자기한 심정으로 사창가에 눌러앉게 된 영은은 방울이라는 이름으로 본격적인 영업에 나섭니다.
이 손님, 저 손님을 거치며 점점 그 생활에 익숙해져 가던 영은에게 어느 날 순박한 청년 길룡(한정현)이 배정됩니다. 딱 봐도 여느 손님과 다른 느낌의 길룡에게 저녁을 못 먹었다며 잠시 만화책이라도 보라며 방을 나서는 영은. 알고 보면 영은은 다른 손님을 맞으러 잠깐 길룡을 속인 것. 그렇게 다시 길룡이 있는 방으로 돌아오지만 길룡은 영은과 관계를 가질 생각이 없고, 영은은 녹초가 되어 곯아떨어집니다. 그리고 새벽녘 눈을 떠보니 길룡이 사다준 약봉지가 놓여있습니다.
시간이 흘러, 길룡이 영은을 다시 찾지만 이미 영은은 여기저기 떠도는 신세. 어렵사리 광주에 있는 영은을 찾았지만, 악덕 포주에게 당하고 당해 몸도 마음도 만신창이가 된 영은을 길룡은 따스하게 감싸 안습니다. 하지만 영은이 그 바닥에서 발을 빼기란 애초에 불가능해 보였고, 둘의 마음은 애틋하지만 현실은 늘 그들의 발목을 잡습니다.
글쎄요, 어떤 말씀을 전하고 싶으셨는지는 잘...
극 중 대사에도 언급되지만, '매춘'은 역사적으로도 가장 오래된 직업 중 하나로 간주되는 하나의 산업이기도 하고, 한국영화에서도 1970년대 이른바 호스티스 소재 영화부터, 1980년대 흥행에 성공한 영화 <매춘(1988)>을 비롯해 고급 매춘부, 인신매매 등 사회의 음지에 기반한 일종의 서비스 업종에 관한 영화들이 다수 제작되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 영화 <창(娼)(노는 계집 창)>을 기존에 제작된 비슷한 소재의 영화들과 차별시키는 단 한 가지 요소는 바로 '임권택 감독'의 작품이라는 점이었습니다.
하지만, 어느덧 25년 전 영화가 되었지만 개봉 당시에 봤을 때도, 25년이 지난 요즘 다시 봐도 이 영화를 통해 전하고 싶던 메시지를 명확하게 이해하지 못하겠습니다. 주인공 영은이 20여 년의 시간 동안 그 바닥의 신성에서 베테랑으로, 그리고 한물간 퇴물 취급을 당하기까지, 이를 연기한 신은경 배우가 보인 혼신의 열연은 높이 살만합니다. 하지만 세월의 흐름을 보여주기 위해 간간이 등장하는 TV 뉴스 클립들 - 박정희 대통령 저격 사건, 88 서울 올림픽 개막식, 박한상 살인사건 등-은 너무 직접적인 장치로 설정되어 촌스럽고, 영은을 둘러싼 대부분의 남성 캐릭터들은 평면적이라 드라마 전개에 별반 인상적인 흔적을 남기지 못합니다. 영은에 대한 지고지순한 순정을 바친 길룡 캐릭터도, 이를 연기한 한정현 배우의 연기력도 문제지만 캐릭터 자체가 밋밋하여 그 애절함의 절반도 전해지지 않았고요.
그래도 나락으로 떨어질 뻔했던 신은경 배우는 이 영화에서의 성공 이후, <건축무한 육면각체의 비밀(1998)><링 바이러스(1999)>등 작품 활동이 이어졌고, 이 영화 <창(娼)(노는 계집 창)>에서 독실한 신자인 포주로 나온 박상면 배우와 부부로 등장한 <조폭 마누리(2001)>가 흥행에 크게 성공하면서 주연급 스타로서의 명성이 2000년대에도 계속 이어졌습니다. 그 점이 그나마 영화 <창(娼)(노는 계집 창)>이 끼친 순기능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사회적 물의를 빚은 배우에게 재기의 발판이 된 작품이 이전 이미지와 상반된 캐릭터인 데다 과감한 노출이 따라야 했다는 점은 못내 씁쓸한 뒷맛을 남기기는 했습니다.
[영화 정보]
국내 제목: 창(娼)(노는 계집 창)
영제: Downfall
제작국가: 한국
감독: 임권택
캐스트: 신은경, 한정현, 최동준, 정경순, 안병경, 방은미, 오지혜, 김동수 등
장르: 드라마
러닝타임: 105분
관람등급: 청소년 관람불가
개봉일: 1997년 9월 13일
주요 수상내역:
1997년 35회 대종상 4개 부문 수상 - 여우조연상(정경순), 미술상, 음향기술상, 의상상
1998년 34회 백상 예술대상 영화부문 인기상(신은경)
1997년 18회 청룡영화상 3개 부문 수상 - 여우주연상(신은경), 여우조연상(정경순), 촬영상
[관련 글]
임권택 감독 다른 연출 영화
달빛 길어올리기(2011) - 달빛과 한지, 그 아름다운 조화에 대하여
※ 글 내용 중에 영화 <달빛 길어올리기(2011)>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임권택 감독의 101번째 장편 연출작 <달빛 길어올리기 Hanji>는 우리나라 전통 한지의 우수성과 아름다움을 수묵화와도 같은
bryanjo.com
길소뜸(1986) - 작가의 예술적 성취와 도덕적 의무의 상관관계
※ 글 내용 중에 영화 <길소뜸(1986)>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1983년 약 5개월 간 방영된 KBS 연속 특별생방송 '이산가족을 찾습니다'는 사회적으로 커다란 반향을 일으켰던 일대 사건이었습니다.
bryanjo.com
티켓(1986) - 선정적인 소재를 선정적이지 않고 날카로운 시선으로 그린 사회 고발극
※ 글 내용 중에 영화 <티켓(1986)>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1957년 데뷔하여, 1986년 당시 기준으로 30년 가까운 시간 동안 정상급 주연배우로 활동하던 김지미 배우가 자신의 이름을 내걸고 설립한
bryanjo.com
연산일기(1987) - 흉폭한 그 남자, 연산군의 기록
※ 글 내용 중에 영화 <연산일기(1987)>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1987년 연말에 열린 26회 대종상 최우수작품상 후보에 오른 5편을 보면, 변장호 감독의 <감자>, 송영수 감독의 <우리는 지금 제네바로
bryanjo.com
아제 아제 바라아제(1989) - 깨달음을 얻기 위해 희생해야 할 것들에 대한 성찰을 담은 영화
※ 글 내용 중에 영화 <아제 아제 바라아제(1989)>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씨받이>로 1987년 44회 베니스 국제영화제 여우주연상을 수상한 강수연 배우와 임권택 감독이 다시 한번 협업한 <아제
bryanjo.com
씨받이(1986) - '월드스타' 강수연의 탄생
※ 글 내용 중에 영화 <씨받이(1986)>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1987년 당시 21세였던 강수연 배우가 한국 배우 최초로 3대 국제영화제 중 하나인 베니스 국제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을 수상한 작품 <
bryanjo.com
'영화리뷰 1990년대' 카테고리의 다른 글
타임 투 킬(1996) - 누가 그에게 돌을 던질 수 있는가? (0) | 2022.05.21 |
---|---|
정사(情事)(1998) - 욕망(欲望)과 욕정(欲情) 사이 그 어딘가 (0) | 2022.05.21 |
홀리데이 인 서울(1997) - 이럴 거면 차라리 리메이크를 하지 그러셨어요 (0) | 2022.05.20 |
베를린 리포트(1991) - 굳이 왜 베를린이고 파리인지 도통 모르겠지만 (0) | 2022.05.19 |
빽 투 더 퓨쳐 3(1990) - 시간 여행 '3부작' 여정의 유쾌한 마무리 (0) | 2022.05.19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