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글 내용 중에 영화 <헤어질 결심(2022)>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헤어질 결심(2022) - 내성적이면서 관능적인 미스터리 로맨스
<헤어질 결심 Decision to Leave>은 <달은... 해가 꾸는 꿈(1992)>으로 데뷔한 박찬욱 감독의 11번째 장편 영화 연출작이며, 2022년 75회 칸영화제 감독상 수상작입니다.
박찬욱 감독과 칸영화제와의 인연은, 처음 경쟁부문에 초청됐던 <올드보이 Oldboy(2003)>가 2004년 57회 그랑프리를 수상한 이후, 2009년 62회 심사위원상 수상작 <박쥐 Thirst>, 그리고 2016년 69회 경쟁부문에 초청된 <아가씨 The Handmaiden>으로 이어졌고, 4번째 경쟁부문 초청작인 <헤어질 결심>으로 감독상을 수상하여, 임권택 감독이 <취화선 Chihwaseon>으로 지난 2002년 55회 감독상을 수상한 이후 한국 감독으로서는 두 번째 감독상 수상자가 되었습니다.
이미 칸영화제에서 공개된 직후부터, 평론가들과 기자들의 엄청난 호평을 받으며 강력한 황금종려상 수상 후보로 거론됐던 만큼, 어서 국내 개봉일이 다가오기를 손꼽아 기다렸고, 드디어 <헤어질 결심>을 보게 되었습니다.
어떤 내용이길래
산 꼭대기에서 추락사한 기도수(유승목)의 죽음을 조사하던 형사 해준(박해일)은 도수의 아내인 중국인 서래(탕웨이)를 만납니다. 스스로 한국어는 서툴다고 말하지만, 웬만한 의사 표현에 문제가 없어 보이는 서래. 하지만, 형사 입장에서 보면, 남편이 죽었는데 유달리 침착한 서래의 태도는 의아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럼에도 용의 선상에서 배제할 명분이 없는 상태에서 서래를 조사하던 해준은 조금씩 서래에 대한 관심이 커져감을 감지하지만, 도통 알 수 없는 서래의 속마음을 밝혀내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서래에 대한 의심을 거둘 수 없는 해준, 그걸 알면서도 해준을 밀쳐내지 않는 서래. 과연 도수의 죽음과 관련한 비밀은 무엇이었을지, 그 비밀을 밝혀낼 수나 있을지... 해준의 수사는 계속됩니다.
어딘가 새로우면서도, 어딘지 모르게 익숙한
이미 칸영화제 공개 직후부터 멈출 줄 모르는 호평 세례가 쏟아진 만큼, 영화 <헤어질 결심>에 대한 궁금증은 날로 커질 수밖에 없었고, 이를 두 눈으로 직접 목격한 직후 들었던 첫 번째 감흥은 '명민하고 똑 부러지는 특급 모범생이 제출한 정답지'와 같다는 생각이었습니다. 중국어와 한국어는 언어 체계가 다르기 때문에, 외국인이 아무리 능숙하게 한국어를 구사한다 해도 어색한 억양과 발음이 있는데요. 탕웨이 배우는 그 어색함마저, 서래의 알쏭달쏭한 캐릭터에 녹여내면서 '중국인 탕웨이'가 아닌 '송서래'라는 캐릭터가 구사하는 한국어 연기로 승화시켜, 오히려 특유의 억양과 발음이 섹시하게 들렸습니다. 박해일 배우가 연기한 해준에게는 좀 더 구체적이고도 촘촘한 설정들이 덧씌워져, 서래 캐릭터의 모호함을 상쇄시키는 반대급부적 역할이 부여되었습니다. 주머니가 여러 개 달린 겉옷과 바지 속에는 립밤, 핸드크림, 물티슈 등의 '깔끔함'을 유지하기 위한 도구들이 항상 구비되어 있고, '불면증'이라는 증상까지 더해 예민함이 추가되었습니다. 거기에, 깔끔한 슈트 차림으로 용의자를 막대하지 않는 신사다운 면모를 가진 형사여서, 급기야 서래의 입에서 '품위 있다'는 대사가 나오게 세팅되었고, 박찬욱 감독의 이전작들에서도 발견되었던, 생활 속에서 흔히 쓰이지 않는 어휘들이 군데군데 배치되어 특유의 '품위'가 유지되었습니다.
칸영화제 참석을 비롯, 프로모션 활동에 탕웨이, 박해일 두 주연배우가 주로 활약했지만, 우리는 이미 알고 있었습니다. 두 배우 외에도, 이정현, 박용우, 고경표 등의 자기 색깔이 분명한 배우들이 함께 출연한다는 것과, 코미디언 김신영의 정극 첫 도전작이라는 것도. 거기에 박정민, 이학주, 정하담, 정영숙, 정이서, 유승목 등 길지 않은 분량임에도 각자 존재감을 과시하는 배우들의 연기도 짧고 굵게 인상적이었습니다. 각 배우들은 한치의 흐트러짐도 없이 꽉 짜인 시나리오에 따라 적절하게 치고 빠지며, 극 중에 적절하게 삽입된 명곡 정훈희의 '안개'처럼 앞이 내다보이지 않는 미스터리 안에서 제 몫을 다합니다.
개봉 전 화제가 되었던 것은, 박찬욱 감독의 영화로서는 오랜만에 '15세 관람가'를 받았다는 점이었는데요. 서래와 해준, 두 사람의 야릇한 로맨스는 마치 두 연인의 입술이 닿을 듯 말듯한 키스 직전의 긴장감 넘치는 순간들의 연속처럼, 지나치게 끈적이지 않으면서도 묘한 가슴 떨림을 안겨줍니다. 노골적이고 직접적인 성적 묘사가 없음에도 탕웨이, 박해일 배우가 함께 등장하는 몇몇 장면에서는, 그러한 묘사 이상의 긴장감이 고조되기도 합니다.
영화는 크게(임의적으로) 두 부분으로 나뉘는데, 서래의 전남편 도수(유승목)와 서래의 새로운 남편 호신(박용우)의 죽음, 즉 13개월 차이로 벌어지는 두 번의 사망사건을 기준으로 스토리가 전개됩니다. 여기서 조금 아쉬웠던 부분은, 도수와 호신, 두 남편의 사망사건에 서래가 모두 용의자로 떠오르지만, 그 비밀이 밝혀지는 과정은 조금 갑작스러웠습니다. 알쏭달쏭한 분위기로 한층 고조되던 미스터리가 너무 쉽게 그 매듭이 풀어졌다고나 할까요. 결국, '누가 범인이냐'가 중요했다기보다는, '서래가 진범이냐 아니냐'가 중요했고, 쉽게 풀린 매듭에 대한 아쉬움은, 장렬한 엔딩에 다다르면서 조금 옅어지기는 했습니다.
한때 오랜 시간 모아 온 영화 전단지 2만 여장을 모두 친구에게 양도한 이후, 전단지를 모으는 일은 그만뒀는데요. 마침 팬데믹으로 인해 2년여 극장가가 꽁꽁 얼어붙어버리면서, 거리두기가 완화된 요즘에도 예전처럼 개봉작들의 전단지가 만들어지지는 않아, 나름 다행이라고(?) 생각하고는 있습니다. 그럼에도, 뭔가 모으는 일을 좋아하는 제가 그 관심과 집착을 멈출 수 없는 것이, 메가박스에서 배포하는 오리지널 티켓인데요. 전체 시리즈를 모두 모으진 못했지만, 받을 수 있을 땐 악착같이 받아서 고이 모셔둡니다. 그런 의미에서, <헤어질 결심>의 오티는 외면할 수 없었고, 혼영 하는 주제에, 친구 동수까지 초대하여 오티 2종 모두를 받아버렸습니다.
[영화 정보]
국내 제목: 헤어질 결심
영제: Decision to Leave
제작국가: 한국
감독: 박찬욱
캐스트: 탕웨이, 박해일, 이정현, 박용우, 고경표, 김신영 등
장르: 로맨스/드라마/미스터리/서스펜스
러닝타임: 138분
관람등급: 15세 관람가
개봉일: 2022년 6월 29일
주요 수상내역:
2022년 75회 칸영화제 감독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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