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글 내용 중에 영화 <바람 피기 좋은 날(2007)>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바람 피기 좋은 날(2007) - 대체 이 바람은 어디서 불어오는지
1988년 발표된 가수 이지연의 히트곡 '바람아 멈추어다오'로 시작하는 영화 <바람 피기 좋은 날 A Good Day to Have an Affair>는 <행복한 장의사(1999)>로 데뷔한 장문일 감독의 두 번째 장편 영화 연출작입니다.
16세이던 1986년 이황림 감독의 <깜보>로 데뷔하여 당시 배우 22년 차였던 김혜수 배우와 박찬욱 감독의 <올드보이 Oldboy(2003)>로 강렬한 인상을 남긴 뒤 <슈퍼스타 감사용(2004)><내 생애 가장 아름다운 일주일(2005)>등으로 한창 주연급 스타로 성장 중이던 윤진서 배우가 불어오는 바람을 온몸으로 맞이하는 주부를 연기했습니다.
영화 <바람 피기 좋은 날>은 2007년 2월 개봉하여 전국 관객수 170만 명을 기록하여 괜찮은 흥행 성적을 기록하기도 했습니다.
어떤 내용이길래
남편과의 무난한 결혼생활이 심드렁한 30대 아내들이 각자 '이슬'(김혜수), '작은 새'(윤진서)란 대화명으로 낯 모르는 남자들과 은밀한 대화를 삶의 낙으로 삼습니다. 매사 자신만만하고 과감한 성격의 이슬의 상대는 20대 대학생 '누나들의 로망'(이민기), 속 안에 어떤 생각을 품었는지 결코 내색하지 않는 스타일의 작은 새는 번듯한 증권회사 직원 '여우 두 마리'(이종혁)와 매일 채팅을 나누며 서로에 대한 환상을 키워갑니다. 수없는 채팅을 통해 서로 익숙해진 두 커플, 드디어 실제 만남의 순간이 다가오는데... 남편이 아닌 낯선 남자와의 만남은 이슬과 작은 새의 인생에 어떤 바람을 불러일으키게 될까요?
바람 끝에 찾아온 갑작스러운 우정
혼인 상태에 있는 사람이 배우자 외의 상대와 정신적, 육체적 관계를 맺고, 배우자가 이를 발각했을 때 죄를 물을 수 있었던 '간통죄'는 지난 2015년 위헌 결정에 따라 폐지되었습니다. 영화 <바람 피기 좋은 날>이 제작된 2000년대 중후반은 아직 간통죄가 유효한 시대였고, 극 중 이슬의 남편이 카메라맨을 대동하고 모텔 방을 덮치는 장면이 나옵니다. 영화 <바람 피기 좋은 날>은 그렇다고 해서, 간통죄의 심각성을 설파하려는 '사랑과 전쟁' 스타일의 설교를 늘어놓는 영화는 아닙니다. 그렇다고 혼외정사의 정당성을 설파하려는 것 같지도 않습니다.
또 그렇다고 해서, 혼외정사가 알고 보니 '찐 사랑'이었다며 눈물 쏙 빼는 멜로도 아니고, 간통을 저지른 아내를 혼쭐 내는 남편의 복수극을 그린 치정 스릴러도 아닙니다. 그저 영화의 시작과 끝을 장식하는 이지연의 히트곡 '바람아 멈추어 다오'의 부담 없는 멜로디와 단순한 가사처럼, 한바탕 웃음으로 흘려보낼 법한 두 주부의 가벼운 일탈을 가볍게 그린 영화입니다.
애초에 주요 캐릭터들이 평면적이라, 이슬과 작은 새의 일탈도, 극 중반 갑작스럽게 형성되는 두 여성 캐릭터의 유대감도 뜬금없습니다. 남편이 모텔 방을 덮쳐 현장이 발각되고, 친정 엄마까지 대동해 크게 곤경에 빠졌던 이슬이 대학생 '누나들의 로망'을 잊지 못해 다시 만나는데, 이슬이 그렇게 행동하는 이유가 대학생에 대한 집착인지, 사랑인지도 모호합니다. 오히려 속내를 들키지 않는 내숭형 작은 새가 중반을 넘어가면서 대담해지는데요. 그렇다고 '여우 두 마리'에 대한 지나친 집착으로 발전하여 극의 긴장감이 급상승하는 것도 아닙니다.
결국 영화가 보여주려는 이야기의 중심이 무엇인지 이해하기도 어려워지고, 과감한 주부-풋내기 대학생, 내숭 스타일 주부-증권맨, 두 커플의 불륜행각은 이도 저도 아니게 흘러가고, 결국 이슬과 작은 새가 사고를 당하면서 둘의 유대감은 더욱 끈끈해지지만, 마치 바람피운 아내들에 대한 처벌인가 싶은 찝찝한 뒷맛만 남았습니다. 그러다, 결국 오프닝에 삽입된 '바람아 멈추어 다오'가 엔딩에 다시 등장하는 순간, 극 중 모든 상황과 설정이 한바탕 거대한 농담으로 끝맺는 듯싶었습니다.
두 커플이 모텔 방을 전전하는 동안 몇 차례 19금 장면이 등장하지만 그 수위는 전혀 높지 않고, 오히려 극 중 극으로 등장하는 조단역급 배우들의 정사 장면이 그런 주연 4인방의 낮은 노출 수위를 만회하려는 듯한 몸부림처럼 느껴졌습니다.
[영화 정보]
국내 제목: 바람 피기 좋은 날
영제: A Good Day to Have an Affair
제작국가: 한국
감독: 장문일
캐스트: 김혜수, 윤진서, 이종혁, 이민기, 박혁권, 황정민, 이라혜, 박상면 등
장르: 로맨스/코미디
러닝타임: 103분
관람등급: 청소년 관람불가
개봉일: 1998년 5월 1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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