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글 내용 중에 영화 <햄릿(1990)>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햄릿(1990) - 액션 스타 멜 깁슨, '햄릿'이 되다
'리어왕 King Lear', '오델로 Othello', '맥베스 Macbeth'와 함께 영국의 대문호 윌리엄 셰익스피어 William Shakespeare(1564~1616)의 4대 비극 중 하나인 '햄릿 Hamlet'은 지금까지 여러 차례 영화화되었습니다. 우선 로렌스 올리비에 Laurence Olivier가 주연, 연출, 제작, 각본을 맡은 1948년 버전은 21회 아카데미 작품상 수상작이고, 1996년 케네스 브래너 Kenneth Branagh가 주연, 각색, 연출을 맡은 1996년 버전은 러닝타임이 4시간에 달하는 대작으로 원작 희곡이 담고 있는 내용을 최대한 재현한 것으로 유명합니다. 그리고, 에단 호크 Ethan Hwake가 타이틀롤을 맡은 2000년작은 현대 뉴욕을 배경으로 각색한 '현대판 햄릿'입니다.
그리고, 올리비아 핫세 Olivia Hussey가 줄리엣을 연기한 <로미오와 줄리엣 Romeo and Juliet(1968)>과 플라시도 도밍고 Plácido Domingo가 타이틀롤을 맡은, 주세페 베르디 Giuseppe Verdi의 오페라의 영화 버전인 <오델로 Othello(1986)> 등 셰익스피어 원작 영화를 여러 차례 연출한 프랑코 제피렐리 Franco Zeffirelli(1923~2019)의 1990년작 <햄릿 Hamlet>이 있습니다.
제피렐리의 <햄릿>은 일단 캐스팅부터 압도적인데요. '리쎌 웨폰 Lethal Weapon' 시리즈와 '매드 맥스 Mad Max' 시리즈 등으로 당시 할리우드에서 손꼽히던 액션 스타였던 멜 깁슨 Mel Gibson이 타이틀롤 햄릿을 연기했고, 거투르드 왕비에는 글렌 클로즈 Glenn Close, 오필리어에는 헬레나 본햄 카터 Helena Bonham Carter, 클로디우스 왕 역에는 앨런 베이츠 Alan Bates, 폴로니우스에는 이안 홈 Ian Holm, 선왕의 망령에는 폴 스코필드 Paul Scofield 등 1990년 당시 기준으로도, 지금의 기준으로 봐도 굉장히 화려한 명배우들의 이름들입니다.
클로디우스 왕을 연기한 앨런 베이츠는 1992년 45회 영국 아카데미 BAFTA 남우조연상 노미네이트 되었었고, 영화에서 중요한 요소로 돋보였던 미술과 의상은 1991년 63회 아카데미 미술상과 의상 디자인상 후보에 오르면서 높이 평가받았습니다.
어떤 내용이길래
영화 <햄릿>의 내용은 우리가 익히 잘 알고 있는 '햄릿'의 이야기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셰익스피어의 원작 희곡의 내용을 거의 그대로 따랐으며, 1990년 기준으로 현대적인 각색은 반영되지 않았습니다.
장소는 덴마크 왕국의 엘시노어 성. 국왕이 타계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왕의 동생 클로디우스(앨런 베이츠)는 선왕의 왕비이자 자신의 형수였던 거투르드 왕비(글렌 클로즈)를 자신의 아내로 들이면서, 스스로 왕위에 오릅니다. 선왕의 아들 햄릿 왕자(멜 깁슨)는 삼촌과 어머니가 부부가 되는 광경이 눈앞에 펼쳐지자 큰 충격에 휩싸입니다. 혼란스러운 햄릿 앞에 선왕의 망령(폴 스코필드)이 나타나고, 자신은 동생 클로디우스에게 독살당했다고 말합니다.
아무래도 눈앞에 헛것이 보이는 듯하여, 햄릿은 선왕의 망령을 믿지 못하면서도, 사건의 실체를 알아보려는 마음에 클로디우스 왕 앞에서 국왕 독살 살해 사건을 연극으로 꾸며 공연합니다. 그때 창백해지는 클로디우스 왕의 안색. 이를 놓치지 않은 햄릿은 클로디우스 왕이 실제 독살을 저질렀음을 확신하게 됩니다. 그날 이후 햄릿은 실성한 척 연기하며 주변을 혼란스럽게 하고, 어머니 거투르드 왕비 앞에서도 미친 척 연기를 합니다.
그러다 누군가가 그들의 대화를 엿듣고 있다는 것을 눈치챈 햄릿, 그가 클로디우스 왕이라 확신한 햄릿은 장막 뒤에 누군가를 칼로 찌르는데, 알고 보니 재상 폴로니우스(이안 홈)였습니다. 평소 햄릿을 흠모하던 폴로니우스의 딸 오필리어(헬레나 본햄 카터)는 갑작스러운 아버지의 죽음에 충격을 받아 결국 정신줄을 놓게 되고 급기야 죽음을 맞이합니다. 정신 나간 햄릿을 처단하려는 클로디우스 왕의 계략은 멈추지 않고, 햄릿 또한 클로디우스 왕에 대한 복수심을 거두지 않습니다.
영화 한 편을 보면서 문학 작품을 읽는 듯한 경험
이미 위에서도 꽤 흥분한 채로 나열했지만, 프랑코 제피렐리 감독의 <햄릿(1990)>이 주는 가장 큰 쾌감은 훌륭한 배우들의 연기입니다. 당시 30대 초중반이었던 멜 깁슨은 기존의 액션 스타 이미지를 살짝 내려놓고, '죽느냐 사느냐 그것이 문제'라고 고뇌하던 덴마크 왕자 햄릿으로 변신했습니다. 희곡이 원작이다 보니, 전체적인 대사톤이 연극 공연처럼 느껴지는데요. 멜 깁슨은 꽤 긴 분량의 독백도, 거트루드 왕비 역의 글렌 클로즈와 벌이는 격정적인 설전도, 대배우 앨런 베이츠와 대적하는 장면에서도 꽤 훌륭하게 햄릿을 연기했습니다.
글렌 클로즈나 앨런 베이츠, 폴 스코필드는 더 이상의 부연 설명이 필요 없을 정도로 매 작품마다 꽉 찬 연기력을 보인 배우들이라, 상대적으로 멜 깁슨이 다소 위축될 수도 있겠다 싶었지만, 막상 영화를 보다 보면 극의 대부분을 이끌어 가는 햄릿 역에 멜 깁슨이 상당히 잘 어울려서 놀라웠습니다. <전망 좋은 방 A Room with a View(1985)>의 루시 역으로 영화에 데뷔한 헬레나 본햄 카터가 연기한 오필리어도 훌륭했습니다.
[영화 정보]
국내 제목: 햄릿
원제: Hamlet
제작국가: 미국/영국/이태리
감독: 프랑코 제피렐리
캐스트: 멜 깁슨, 글렌 클로즈, 앨런 베이츠, 폴 스코필드, 이안 홈, 헬레나 본햄 카터, 스티븐 딜레인, 나다니엘 파커, 마이클 말로니, 존 맥케너리, 숀 머레이, 트레버 피콕 등
장르: 드라마/로맨스
러닝타임: 130분
관람등급: 12세 관람가
개봉일: 1992년 5월 23일 (한국)/1990년 12월 19일 (미국)
주요 수상내역:
1991년 63회 아카데미 2개 부문 노미네이트 - 미술상, 의상 디자인상
1992년 45회 영국 아카데미 BAFTA 남우조연상 노미네이트(앨런 베이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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