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영화리뷰 2020년대

내가 죽던 날(2020) - 다시 살아가기 위해 예전의 나를 죽이다

by 조브라이언 2022. 8. 12.
반응형

출처-구글 이미지

※ 글 내용 중에 영화 <내가 죽던 날(2020)>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내가 죽던 날(2020) - 다시 살아가기 위해 예전의 나를 죽이다

박지완 감독의 장편 영화 연출 데뷔작인 <내가 죽던 날 The Day I Died: Unclosed Case>는 어느 폭풍우가 치던 밤, 외딴섬 절벽 끝에서 감쪽같이 사라져 버린 한 소녀의 행적을 쫓던 형사가 소녀가 죽었는지 실종됐는지 진실을 파헤치는 과정에서 자신이 살아야 할 이유를 깨닫게 된다는 감성 추적극입니다.

 

영화 <국가부도의 날 Default(2018)>에서 한국은행 통화정책팀장 한시현, SBS 금토 드라마 <하이에나 Hyena(2020)>에서 열혈 변호사 정금자를 연기한 김혜수 배우가 <내가 죽던 날>의 서사를 이끌어 가는 김현수를 연기했고, 이정은, 노정의, 김선영, 문정희, 김정영, 이상엽, 조한철, 김태훈 배우가 함께 출연했습니다. 이 영화의 연출과 각본을 맡은 박지완 감독은 42회 청룡영화상 신인감독상과 57회 백상 예술대상 영화부문 시나리오상을 받았습니다.


어떤 내용이길래

출처-구글 이미지

오랜 휴직을 마치고 복귀를 앞두고 있는 서울 서남 경찰서 경위 김현수(김혜수). 자신을 속이고 불륜 행각을 벌인 남편(김태훈)과의 갈등으로 괴로워하던 현수가 현장 출동 중 교통사고를 냈고, 그로 인해 한동안 휴직을 하게 되었던 것. 여러 가지로 심경이 복잡한 현수는 삶을 포기하기 직전까지 내몰렸지만, 스스로를 다잡고 다시 살아가기 위해 복직하려 합니다. 그런 현수에게 복직 전 임무를 맡기는 상사(김정영).

 

현수가 조사해야 하는 대상은 고등학생 정세진(노정의). 아버지가 저지른 범죄 조사 과정에서 중요한 증인이 된 세진은 증인 보호 차원에서 외딴섬으로 보내지고, 비밀리에 경찰의 보호를 받게 됩니다. 그러던 어느 폭풍이 몰아치던 밤, 유서 한 장을 남긴 채 사라져 버린 세진. 절벽 근처에서 세진의 신발이 발견된 점으로 보아, 절벽 아래로 투신한 것으로 추정되나 시신이 발견되지 않아 실종 상태로 되어 있습니다. 현수는 세진이 진짜 자살한 것이 맞는지, 아니면 숨겨진 다른 어떤 이유가 있는 건지 알아내야 합니다.

 

섬 주민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정황을 파악하던 중, 세진이 머물렀던 집주인이라는 순천댁(이정은)을 만나게 되는 현수. 하지만 순천댁은 조카의 비극적 사고로 자살기도를 한 탓에 말문이 막혀버렸고, 세진과의 어떤 연관성도 찾을 수 없습니다. 그러면서 현수는 점점 세진이 겪었을 참혹한 진실을 알아가기 시작합니다. 부유한 집안에서 남부러울 것 없이 자라던 세진은 어느 날 아버지의 불법 사업 정황이 드러나면서 가정이 풍비박산 나버리고, 급기야 외딴섬에서 숨어 살게 되었던 거죠. 순천댁의 집에 남아있는 세진의 흔적들을 조사하면서 찾아낸 관련자들을 만나지만, 하나같이 세진의 실종에 관해 입 열기를 꺼려합니다. 결국 현수는 세진이 자살한 것으로 조사를 마무리하고 보고서까지 올립니다. 그러다 현수는 생각지도 못한 새로운 정황을 발견하게 되고, 세진이 자살한 것이 아니라 어딘가에 살아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게 됩니다. 그러면서, 남편과의 이혼 소송에도 적극적으로 맞서겠다는 마음이 생긴 현수는 어쩌면 세진의 사건을 조사하면서 자신이 살아야겠다는 의지를 찾게 된 걸까요.


살기 위해 죽어야만 하는 삶의 아이러니

출처-구글 이미지

영화 <내가 죽던 날>은 제목에서부터 강렬한 첫인상을 남깁니다. 제목만 듣고 앞서가 생각했다면, 마치 주인공이 이미 죽은 사람이고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는 영혼의 이야기인가? 싶기도 했는데요. 영화를 보고 나서 곱씹어 생각해보면 그런 생각이 영 틀린 건 아니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영화의 메인 플롯은 세진의 실종 혹은 자살사건을 조사하는 경찰 현수의 조사과정을 중심으로 펼쳐지는데, 세진이 정말 죽은 게 맞는지 그렇다면 시신은 어디 있는지를 밝혀내는 범죄 추적극의 외양을 띠고 있습니다. 하지만, 현수는 실제 만나본 적도 없는 세진의 행적을 추적하는 과정에서 관련 인물들을 하나하나 만나는 과정에서 점점 세진이 느꼈을 공허함에 이입됩니다.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삶의 울타리가 굳건하리라 믿었다가 처참하게 배반당한 후 찾아든 좌절감은 세진만이 느꼈을 감정이 아닌 것이죠. 현수 또한 (영화에서 보여지지는 않지만) 남편과의 결혼 생활에 위기가 찾아오면서 자신의 직업 세계도 와해되는, 그러면서 스스로 삶을 놔버릴지도 모를 공포감에 사로잡혀 활기를 잃어버립니다.

 

그렇게 서로 다른 시공간에서 각자의 좌절감에 빠져 허우적대던 현수와 세진에게 공통된 인물이 있었으니, 이정은 배우가 연기한 순천댁입니다. 결국 세진에게 살아야 한다는 의지와 희망과 실질적인 도움을 주고, 식물인간 상태에 빠진 조카의 명의를 세진에게 주어 새 인생을 살게끔 도와주죠. 결정적인 증거를 통해 그런 사실을 알아챈 현수는 이를 밝혀 보고하기에 급급한 직장인의 본분을 다하지 않고, 순천댁과 세진 사이에 분명하게 존재했을 공감대에 자신을 이입시킵니다. 그리고 세진이 새 출발을 한 태국(으로 추정되는 휴양지)으로 찾아가 결국 세진을 만나게 되면서 현수 또한 과거의 자신에서 벗어나 새로운 나로 행복한 엔딩을 맞이합니다. 세진 또한 '정세진'이라는 자신을 버리고 새로운 존재로 새로운 곳에서 새롭게 태어났으니, 그 또한 행복한 결말이 됩니다.

 

영화 <내가 죽던 날>의 커다란 미덕 중 하나는, 세진의 실종 혹은 자살 사건의 실체가 밝혀지는 과정을 깜짝 놀라게 하는 반전의 도구로 쓰지 않고, 은근한 감동을 전해주는 중간 매개체로 적절하게 활용했다는 점입니다. 그리고, 세 명의 주요 캐릭터를 연기한 김혜수, 이정은, 노정의 배우를 비롯해 김선영, 문정희, 김정영 배우 등 현수와 세진 주변 인물들을 연기한 여성 배우들의 등장이 반가웠습니다.

 

[영화 정보]

국내 제목: 내가 죽던 날

영제: The Day I Died: Unclosed Case
제작국가: 한국
감독: 박지완
캐스트: 김혜수, 이정은, 노정의, 김선영, 이상엽, 문정희, 김정영, 조한철, 김태훈 등
장르: 드라마/미스터리
러닝타임: 116분
관람등급: 12세 관람가
개봉일: 2020년 11월 12일

 

주요 수상내역:

2021년 57회 백상 예술대상 영화부문 시나리오상 수상

2021년 42회 청룡영화상 신인감독상 수상

 

[관련 글]

김혜수 배우 다른 주연 작품 리뷰

http://bryanjo.com/476

 

바람 피기 좋은 날(2007) - 대체 이 바람은 어디서 불어오는지

※ 글 내용 중에 영화 <바람 피기 좋은 날(2007)>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1988년 발표된 가수 이지연의 히트곡 '바람아 멈추어다오'로 시작하는 영화 <바람 피기 좋은 날 A Good Day to Have an Affair>는

bryanjo.com

http://bryanjo.com/475

 

찜(1998) - 꽤 선방한 안재욱의 여장, 하지만 작품 자체로는 평이한 로맨틱 코미디

※ 글 내용 중에 영화 <찜(1998)>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영화 <찜 Tie a Yellow Ribbon>은 최진실, 김승우 배우 주연의 <고스트 맘마(1996)>로 데뷔한 한지승 감독의 두 번째 장편 연출작입니다. <닥터 봉(

bryanjo.com

http://bryanjo.com/347

 

미스터 콘돔(1997) - 누가 봐도 급조된 기획 영화의 한계를 여실히 드러내다

※ 글 내용 중에 영화 <미스터 콘돔(1997)>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1996년 <유리>로 장편 연출 데뷔작을 발표한 양윤호 감독의 두 번째 장편 연출 영화 <미스터 콘돔 Mr. Condom>은 1997년 3월 개봉한 섹

bryanjo.com

http://bryanjo.com/414

 

어른들은 몰라요(1988) - 여러 가지 재료들을 욕심껏 담았다가 옆구리 터진 김밥처럼

※ 글 내용 중에 영화 <어른들은 몰라요(1988)>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1986년 <청(靑) 블루 스케치>로 데뷔한 후, 두 번째 장편 연출 영화 <미미와 철수의 청춘 스케치(1987)>가 크게 흥행에 성공했

bryanjo.com


노정의 배우의 다른 출연 작품 리뷰

http://bryanjo.com/308

 

니 부모 얼굴이 보고 싶다(2022) - 수면 아래 감춰진 인생의 아이러니

※ 글 내용 중에 영화 <니 부모 얼굴이 보고 싶다(2022)>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일본의 교사 출신 작가 하타사와 세이고가 쓴 동명의 희곡을 각색한 영화 <니 부모 얼굴이 보고 싶다>가 드디어

bryanjo.com


김선영 배우의 다른 출연 작품 리뷰

http://bryanjo.com/425

 

브로커(2022) - 명감독의 이름값에 대한 고찰

※ 글 내용 중에 영화 <브로커(2022)>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1995년 장편 연출 데뷔작 <환상의 빛 幻の光> 이후, <원더풀 라이프 ワンダフルライフ(1998)><디스턴스 ディスタンス(2001)><아무도 모른

bryanjo.com

http://bryanjo.com/517

 

미씽: 사라진 여자(2016) - 어느 날 갑자기 사라진 베이비시터

※ 글 내용 중에 영화 <미씽: 사라진 여자(2016)>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임수정, 김래원 배우 주연의 <... ing(2003)>로 데뷔한 이후, 이미연, 이태란 배우 주연의 <어깨너머의 연인 Love Exposure(2007)>를

bryanjo.com


문정희 배우의 다른 출연 작품 리뷰

http://bryanjo.com/459

 

숨바꼭질(2013) - 갈팡질팡하다 길을 잃은 내집마련 스릴러

※ 글 내용 중에 영화 <숨바꼭질(2013)>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남의 집에 숨어들어 몰래 살다가 그 집을 차지해 버린다는 도시괴담을 연상시키는 스릴러 영화 <숨바꼭질 Hide and Seek>은 허정 감독

bryanjo.com

http://bryanjo.com/216

 

여고괴담 세 번째 이야기: 여우계단(2003) - 집착이 불러일으킨 비극

※ 글 내용 중에 영화 <여고괴담 세 번째 이야기: 여우계단(2003)>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여고괴담' 시리즈의 3번째 영화인 <여고괴담 세 번째 이야기: 여우계단 Wishing Stairs>는 예술고등학교

bryanjo.com

반응형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