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글 내용 중에 영화 <인도차이나(1992)>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인도차이나(1992) - 대작의 그늘 아래 삐죽 고개를 내민 오리엔탈리즘
제인 버킨 Jane Birkin 주연의 <내 인생의 여인 La Femme de ma vie(1986)>로 데뷔한 후, <프랑스 여인 Une femme française(1995)><동쪽 서쪽 Est-Ouest(1999)> 등 대하 사극 스타일의 작품으로 유명한 레지스 바르니에 Régis Wargnier의 1992년작 <인도차이나 Indochine>는 1930년대부터 20여 년 간 당시 프랑스령(領)이었던 인도차이나 반도에서 펼쳐진 프랑스인들의 사랑과 증오를 그린 시대극입니다.
영화 <인도차이나>에는 프랑스를 대표하는 배우 까뜨린느 드뇌브 Catherine Deneuve와 뱅상 뻬레 Vincent Pérez, 린 당 팜 Linh Dan Pham, 장 안느 Jean Yanne, 도미니크 블랑 Dominique Blanc이 출연했고, 1993년 18회 프랑스 세자르 어워즈 작품상, 감독상 등 12개 부문에 노미네이트 되어, 까뜨린느 드뇌브와 도미니크 블랑이 각각 여우주연상과 여우조연상을 받았고, 촬영상까지 총 3개 부문 수상작이 되었습니다. 또한 1993년 65회 아카데미 외국어영화상 수상작으로, 까뜨린느 드뇌브는 아카데미 여우주연상 후보에도 올랐었습니다.
1992년 4월 프랑스에서 개봉하여 319만 명의 관객을 동원했고, 전 세계 박스오피스 최종 누적 수익은 2,960만 달러(약 387억 원)를 기록했습니다.
어떤 내용이길래
이야기는 프랑스령 인도차이나에서 태어난 프랑스 여성 엘리안느 드브리(까뜨린느 드뇌브)의 회상을 통해 전개됩니다. 1930년, 어머니를 잃은 엘리안느는 아버지와 함께 대규모의 고무 농장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엘리안느는 현지인 계약직 노동자들을 아무렇지 않게 '쿨리'라 낮춰 부르며, 고무 농장이 있는 자신의 집과 사이공 바깥에서의 삶을 분리시켜 살고 있습니다. 한편, 엘리안느는 자신과 특별한 친분을 가졌던 응우옌 왕조의 황녀였던 카미유(린 당 팜)를 입양하여 정성을 다해 키우고 있기도 합니다. 인도차이나에 주둔 중인 프랑스 보안국 총책임자 기(장 안느)의 구혼마저 뿌리치고, 카미유의 양육에 정성을 다하는 엘리안느. 당연하게도 카미유는 유럽 특권층 자제들을 대상으로 한 고급 교육을 받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경매장에서 같은 그림을 두고 경쟁하던 젊은 프랑스 해군 중위 장 밥티스트(뱅상 뻬레)를 만나게 된 엘리안느. 서로 그 그림을 가지기 위해 경쟁적으로 경매에 참여한 엘리안느와 장 밥티스트. 그로부터 며칠 후, 장 밥티스트가 아편 밀수 혐의로 작은 돛단배에 불을 낸 혐의를 가진 소년을 찾아 엘리안느의 농장에 나타나고, 엘리안느는 그의 등장에 적잖이 놀랍니다. 그리고 곧 폭풍 같은 사랑에 빠지는 두 사람.
얼마 후, 장 밥티스트가 우연히 카미유를 테러 공격으로부터 구해내고, 카미유는 생명의 은인인 장 밥티스트를 본 순간 사랑에 빠집니다. 하지만 장 밥티스트는 카미유와 엘리안느의 관계에 대해서는 전혀 알지 못합니다. 장 밥티스트에 대한 카밀의 사랑을 알게 된 엘리안느는 해군 고위 관계자들과의 인맥을 동원해 장 밥티스트를 하이퐁으로 전출시켜버립니다. 이를 알게 된 장 밥티스트는 엘리안느의 저택에서 열린 크리스마스 파티에 참석해 엘리안느에 격하게 맞섭니다. 장교들이 그득한 가운데 거친 행동을 멈추지 않은 장 밥티스트는 괘씸죄가 적용돼 인도차이나 북부 외딴 프랑스 군사 기지로 악명 높은 드래곤 섬(혼랑)으로 보내집니다. 그러는 사이, 옌 바이 반란을 지지했다는 이유로 프랑스 학교에서 추방당한 친공산주의 베트남 청년 탄(에릭 응우옌)과 카미유의 약혼을 허락한 엘리안느. 한편, 동정심 많은 성격의 탄은 카미유가 장 밥티스트를 찾아 북쪽으로 가도록 허락합니다. 드래곤 섬까지 걸어서 이동한 카미유는 함께 여행하던 어느 베트남 가족과 함께 노동자들을 가둔 감옥에 끌려갑니다. 함께 여행했던 베트남 인들이 프랑스 장교들에게 잔인하게 고문당하고 결국 살해당하는 광경을 목격한 카미유는 장교 중 한 명을 공격하고 몸싸움을 벌이던 중 결국 총으로 그를 쏴버립니다. 총격전이 이어지는 가운데, 장 밥티스트는 카미유를 보호하기 위해 상관에게 반항하게 되고, 결국 무법자 신세로 전락한 두 사람은 드래곤 섬을 탈출합니다.
프랑스의 식민 제국주의와 제 것을 찾으려는 투쟁 사이에 방황하는 스토리
베트남, 라오스, 캄보디아, 태국, 미얀마, 말레이시아 영토를 아우르는 동남아시아 지역을 통칭하는 인도차이나 반도, 그중에서도 베트남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대서사극이 영화 <인도차이나>입니다. 태국을 제외한 대부분의 나라가 영국과 프랑스의 통치를 받은 적이 있는 아픈 역사가 서려있기도 한데요. 서구 열강들이 남의 나라 땅따먹기에 혈안이 되어 박 터지게 싸웠던 두 차례의 세계 대전 동안 전쟁의 소용돌이에 휩싸이면서도, 전쟁 후에도 이어진 서구 열강의 통치에 맞서 독립을 위해 많은 피를 흘렸던 아픔의 역사를 가진 곳입니다.
출처가 불분명하긴 하나, 카미유 캐릭터가 베트남 정치인 응우옌 티 빈 Nguyễn Thị Bình(1927~)에게서 모티브를 얻었다는 이야기도 있는데요. 실제 응우옌 티 빈은 프랑스 식민 통치에 저항하여 감옥에 수감된 적도 있지만, 영화에서처럼 프랑스인에게 입양된 적은 없는 것으로 보아, 카미유 캐릭터는 실제 인물에서 모티브를 따왔을 수는 있지만 영화적으로 재창조한 가상의 캐릭터인 것 같습니다. 물론, 영화 <인도차이나>에서 카미유는 프랑스 집안에 입양되어 안락한 삶을 누리다가 자신의 핏줄인 베트남의 독립을 위해 집안을 박차고 나가기는 하지만, 영화에서 그리는 카미유의 심경의 변화라는 것이 조국의 독립을 위해 맞서 싸우려는 기개보다는 장 밥티스트에 대한 사랑 쪽으로 기울어서 캐릭터의 치열함은 크게 부각되지 않았습니다.
게다가 카미유와 장 밥티스트가 고초를 겪게 된 결정적 계기가 엘리안느의 질투심에서 비롯되었고, 자신의 인맥을 동원해 장 밥티스트를 타 지역으로 전출시키는 일 정도는 뚝딱 해치우는 등, 갈등을 이끌어가기 위해 벌어지는 상황들이 다소 헐거운 막장드라마 스타일로 전개되어 스토리가 촘촘하다는 느낌은 별로 들지 않기도 하고요.
베트남의 하 롱 베이를 비롯한 현지의 이국적인 풍광 또한 이방인의 시선으로 보았을 때의 느낌인지라 카메라에 담긴 아름다운 장면들에게서 오리엔탈리즘의 느낌을 지우기란 여간 어렵지 않았고, 영화 전반에 걸쳐 프랑스 식민 제국주의와 베트남의 독립을 위한 처절한 몸부림 사이에서 어느 쪽으로 무게를 실어야 할지 갈팡질팡하는 불안함이 느껴졌습니다.
카미유를 연기한 린 당 팜은 1993년 SBS 월화 미니시리즈 <머나먼 쏭바강>에 출연하여 우리에게도 나름 익숙한 배우이기도 한데요. 지난 2016년 우리나라에서 뒤늦게 개봉한 자크 오디아르 Jacques Audiard 감독의 1995년작 <내 심장을 건너뛴 박동 De battre mon cœur s'est arrêté>에서의 등장도 반가웠습니다.
[영화 정보]
국내 제목: 인도차이나
원제: Indochine
제작국가: 프랑스
감독: 레지스 바르니에
캐스트: 까뜨린느 드뇌브, 뱅상 뻬레, 린 당 팜, 도미니크 블랑, 장 안느 등
장르: 드라마/로맨스
러닝타임: 153분
관람등급: 청소년 관람불가
개봉일: 1992년 7월 11일(한국)/2017년 5월 25일(한국 재개봉)/1992년 4월 15일(프랑스)
주요 수상내역:
1993년 65회 아카데미 외국어영화상 수상
1993년 65회 아카데미 2개 부문 노미네이트 - 여우주연상(까뜨린느 드뇌브), 외국어영화상
1993년 50회 골든 글로브 어워즈 외국어영화상 수상
1993년 64회 내셔널 보드 오브 리뷰 어워즈 2개 부문 수상 - 외국어영화 탑 5, 외국어영화상
1993년 18회 프랑스 세자르 어워즈 5개 부문 수상 - 여우주연상(까뜨린느 드뇌브), 여우조연상(도미니크 블랑), 촬영상, 프로덕션 디자인상, 음향상
1993년 댈러스-포트 워스 영화평론가협회상 외국어영화상 수상
1994년 47회 영국 아카데미 BAFTA 비(非) 영어 영화상 노미네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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