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글 내용 중에 영화 <새해전야(2021)>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새해전야(2021) - 앙상블 캐스트의 묘미를 살리지 못한 무색무취(無色無臭) 스토리
로맨스 드라마 <키친 The Naked Kitchen(2009)>으로 데뷔한 후, 옴니버스 영화 <무서운 이야기 Horror Stories(2012)><가족시네마 Modern Family(2012)>를 거쳐 <결혼전야 Marriage Blue(2013)><당신, 거기 있어줄래요 Will You be There?(2016)>를 연출한 홍지영 감독의 네 번째 장편 연출작 <새해전야 New Year Blues(2021)>는 전작 중 <결혼전야>에 이은 앙상블 캐스팅 로맨스 드라마입니다.
<결혼전야>에도 출연했던 김강우, 이연희 배우를 비롯해, 유인나, 유연석, 이동휘, 천두링, 염혜란, 유태오, 최수영, 예수정, 이준혁, 조한철, 안세하, 송상은, 이지하, 권오경 배우 등이 함께 출연한 <새해전야>는 새해가 밝아오기 일주일 전인 12월 25일부터 새해를 맞이하는 순간까지 주요 캐릭터 9명을 중심으로 한 이런저런 이야기를 펼칩니다.
아직 COVID-19 팬데믹이 세상을 덮치기 전이었던 2020년 1월 크랭크업한 후, 제목에서 명시한 '새해전야'가 양력으로는 이미 지난 2021년 2월 10일, 설날 연휴에 맞춰 개봉했으니 음력 새해전야 전전날 개봉한 셈입니다.
<새해전야>의 개봉 첫 주말 전국 관객수는 8만 5천 명으로 같은 날 개봉한 신작 중에서는 가장 많은 관객수를 기록했으나, 1월에 이미 개봉했던 <소울 Soul><극장판 귀멸의 칼날: 무한열차 편 劇場版 鬼滅の刃 無限列車編>에 이어 주말 박스오피스 3위로 데뷔했습니다. 결국 <새해전야>의 전국 누적 최종 관객수는 17만 명을 기록, <결혼전야(2013)>가 기록했던 121만 명과 비교했을 때 꽤 아쉬운 결과를 낳았습니다.
어떤 내용이길래
지호와 효영
강력반에서 민원실로 좌천되어 민원인의 신변 보호를 전담하게 된 이혼 4년 차 형사 강지호(김강우). 어느 날 민원실을 찾아온 재활 전문 트레이너 이효영(유인나)의 신변 보호 요청이 접수됩니다. 남편(서현우)과 이혼 소송 중인 효영은 남편이 자신의 주변을 얼씬거리는 데 위협을 느낀 나머지 경찰의 도움을 원하게 되었고, 지호와 효영의 티격태격 로맨스가 시작됩니다.
래환과 오월
패럴림픽 출전을 목표로 훈련 중인 스노보드 선수 김래환(유태오)은 한쪽 다리를 잃은 신체적 조건에도 불구하고 열심히 훈련에 임하여 선수권 대회에서 훌륭한 성적을 거둡니다. 래환은 늘 자신의 곁에 있어준 고마운 여자친구 한오월(최수영)에게 공개 구혼까지 하고, 래환과 오월 커플은 화제를 모으고, 커플 화보까지 촬영하게 됩니다. 하지만 사람들의 관심은 스노보드 선수로서 래환이 거둔 성과보다는 래환이 가지고 있는 신체적 장애와 오월에게 쏠리게 되고, 이는 꿋꿋하게 지켜온 래환과 오월의 사랑에 위기를 가져다줍니다.
용찬과 야오린, 그리고 용미
중국 관광객을 상대로 한 로컬투어 사업자인 여행사 사장 오용찬(이동휘)은 한국 회사에서 일하게 된 중국인 여자친구 야오린(천두링)과 결혼할 계획을 세웁니다. 마침 용찬의 부모님과 살던 집에서 카페와 게스트하우스 사업을 겸하고 있는 누나 용미(염혜란)와 함께 지내기로 하면서, 중국어와 한국어, 서로 다른 언어의 장벽을 넘어 새로운 가족으로 서로 공감대를 쌓기 시작합니다. 그러던 중, 용찬의 여행사 직원이 횡령을 저지르는 사고가 발생하고, 이로 인해 금전적 손실을 입은 용찬은 야오린과의 결혼 계획에 회의를 갖게 됩니다. 이를 알지 못하는 야오린은 용찬의 태도가 돌변하자 상처받고, 용미는 동생 커플의 갈등을 알아차리게 됩니다.
진아와 재헌
스키장에서 비정규 계약직으로 일하고 있는 민진아(이연희)는 남자친구(최시원)의 갑작스러운 이별 통보에 크게 충격을 받아, 급히 휴가를 내 아르헨타 부에노스 아이레스행 비행기 티켓을 사버립니다. 아는 사람 하나 없고, 말 한마디 통하지 않는 낯선 도시 부에노스 아이레스에서 와인 배달일을 하는 한국인 이재헌(유연석)을 우연히 알게 된 진아. 실연의 상처와 낯선 도시에서의 외로움에 흐느껴 울던 진아에게 조심스럽게 도움의 손길을 내미는 재헌. 라틴 바이브 가득한 도시 부에노스 아이레스에서 두 사람의 인연이 시작됩니다.
밋밋한 스토리 속에서 허우적대는 밋밋한 캐릭터들의 몸부림
앙상블 캐스트의 맛을 제대로 살린 대표작으로 꼽히는 로맨틱 코미디 <러브 액츄얼리 Love Actually(2003)>라던가, 로버트 알트먼 Robert Altman 감독의 <숏 컷 Short Cuts(1993)>이나 폴 토머스 앤더슨 Paul Thomas Anderson 감독의 <매그놀리아 Magnolia(1999)>를 생각해 보면, 메인 플롯 안에 나뭇가지처럼 뻗친 서브플롯의 탄탄한 구조 안에서 다수 캐릭터들이 서로 얽히고설키거나 혹은 제각각이거나, 어떤 캐릭터의 이야기를 따로 빼서 보더라도 서사의 완결성을 확보합니다. 그리고, 각 이야기는 극적 감동이거나 흐뭇함이거나 관객에게 다양한 종류의 카타르시스를 선사하는 것은 물론이고요.
<새해전야>는 감독의 전작 중 비슷한 결의 <결혼전야>와 마찬가지로, 주요 캐릭터 여러 명에게 각각의 이야기가 펼쳐지는데, 각 시퀀스가 정신없이 왔다 갔다 하면서 나열되다 보니 일단 산만합니다. 차라리 각 캐릭터의 이야기를 각각 완결시키듯 챕터를 나눠서 전개하다가 클라이맥스에서 어떤 계기로 - 그것이 반드시 <매그놀리아>의 개구리 비처럼 엄청 충격적일 필요까지는 없습니다만 - 쿵! 하는 어떤 사건으로 모든 인물이 휘말렸다면 정돈된 느낌이 들었을 것 같습니다.
새해전야인 12월 31일을 일주일 앞두고 영화가 시작되지만, 12월 25일부터 12월 31일까지 시간적 특성이 살아나는 장면이 거의 없습니다. 그저 엔딩에서 새해맞이 카운트다운을 하기 위한 설정이었다면, 그 시기는 4월 2일부터 일주일 간이었어도 상관없었을 것 같은, 계절성이 살지 않는 에피소드로 가득합니다.
남매가 등장하는 용미와 용찬 파트에서는 메인 캐릭터가 3명이긴 하지만, 아무튼 네 커플의 이야기가 교차하지만 어느 커플의 이야기도 딱히 매력적으로 돋보이지 않습니다. 지호와 효영 커플 쪽은 로맨틱 코미디의 티격태격으로 시작해 서로에게 서서히 스며드는 클리셰가 너무 빤히 예측되고, 래환과 오월 커플의 갈등도 새로운 이야기는 아닙니다. 용찬과 야오린 커플과 용찬의 누나 용미 에피소드는 한중 커플의 갈등에다 용찬 회사 직원의 횡령에, 용미-용찬 남매 서사까지 더해 너무 많은 이야기를 담으려다 어느 하나 제대로 맛을 내지 못한 퓨전 요리를 연상시킵니다. 가장 진부한 에피소드는 역시 '굳이' 아르헨티나까지 가야 했는지 납득하지 못했던 진아와 재헌 파트입니다.
계약직 이슈, 한중 문화 차이로 인한 커플의 갈등, 신체적 장애를 가진 운동선수에 대한 편견, 스토킹과 관련한 사회 이슈 등 <새해전야>는 로맨틱 코미디가 반드시 판타지를 그려야 하는 건 아니지만, 그다지 세련되지 못한 방식으로 현안들을 건드리지만, 그렇다고 해서 어떤 해법을 제시하려는 의도보다는, 그저 '생각 있게' 만든 로맨스 드라마여야 한다는 강박만이 느껴졌습니다.
[영화 정보]
국내 제목: 새해전야
영제: New Year Blues
제작국가: 한국
감독: 홍지영
캐스트: 김강우, 유인나, 유연석, 이연희, 이동휘, 천두링, 염혜란, 유태오, 최수영, 예수정, 이준혁, 조한철, 안세하, 송상은, 이지하, 권오경, 라미란, 정규수, 손종학, 서현우, 김지영, 남보라, 오상진 등
장르: 로맨스/드라마
러닝타임: 114분
관람등급: 12세 관람가
개봉일: 2021년 2월 1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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